직장내괴롭힘 ‘허위신고’ 말 많아도… 피해자 90%는 아직 ‘신고 포기’

안영춘 기자 2024. 8. 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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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5년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내괴롭힘금지법, 현장이 말하는 제도의 빛과 그림자… 사각지대 좁히고 구성요건 보완해야
2021년 5월10일 고 서지윤 간호사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들머리에서 열려, 유가족이 인사를 하고 있다. 서 간호사는 2019년 1월5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졌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23년 3월 세종시의 한 소방서 지역대 차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불에 탄 소방 펌프차량을 폐차했다. 2012년 10월 중국 간쑤성 란저우시의 한 소방서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 외벽 한 개 라인이 1층부터 꼭대기 6층까지 검게 그을렸다. 부러 구글을 검색해서 찾은 기사 내용이다.

‘소방서에서도 불이 날까’ 하는 객쩍은 호기심이 발동한 건 노동·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 관계자한테서 “노조나 시민단체들 내부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다른 어느 곳보다 인권을 강조하는 조직들에서 괴롭힘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말에 놀라워하자, 그는 “신고가 없는 일터를 완전무결하다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더니, “신고가 들어오는 것보다 좋지 않은 건 신고가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쐐기는 기자의 취약한 고정관념에도 박혔다. 자기 건물에서도 불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소방서야말로 화재에 취약한 소방서일 터였다.

소방서에도 불난다

2024년 7월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을 찾았다. 직장갑질119 관계자가 “신고가 많은” 일터로 ‘강추’한 곳이었다. 공공운수노조는 국내 최대 산별노조다. 2017년부터 공무직 직군의 노조가 대거 조직되면서 16만 명이던 조합원이 25만 명까지 늘었다. 본조 사무처 상근자만 해도 100명에 가깝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기자의 의구심을 읽었던지,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또 다른 대형 산별노조를 예로 들며 “사무처 분위기가 권위적인데다 별도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곳”이라고 귀띔했다.

그날은 때마침 직장갑질119 법률 스태프(상담 자원봉사 전문가)인 김유경 노무사(노무법인 돌꽃)가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새로 임명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원(2명)과 심의위원(4명)이 교육 대상인데, 일부 산하 노조에서도 교육을 들으러 왔다. 방문 취지를 들은 서동훈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누가 그러더냐”며 멋쩍어했다. 내세울 만큼 잘하고 있는지도, 조직 문화로 뿌리내렸는지도 자신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겸손함과 신중함이 동시에 엿보였다. 그는 ‘노조 내 노조’인 서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사무처지회 소속인데다 얼마 전까지 상담원을 맡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해온 과정부터 물었다.

2024년 7월24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에서 김유경 노무사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안영춘 기자

공공운수노조는 2020년 11월 ‘임원·사무처 내 괴롭힘의 예방 및 금지에 관한 규칙’(규칙)을 만들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사무처 가운데 최초였다. 초안 만들기 작업부터 시작했다. 외부 매뉴얼을 두루 참조해 만든 초안은 상임집행위원회에서 난상토론을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 수렴을 하는 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절차를 거쳤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개정에 맞춰 2022년 4월 한 차례 개정도 했다. 규칙은 모두 19조에 걸쳐 25개의 괴롭힘 행위 예시, 예방 교육, 신고 및 상담, 조사, 상담원 선임과 심의위원회 설치, 조사 단계와 심의 이후 피해자 보호, 징계, 재발 방지 조처 등 까다롭다 싶을 만큼 세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규칙을 제정한 계기가 있었을 법하다. “법이 제정되고 나서 산하 노조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단체협약의 모범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사무처부터 규칙을 만들어 실행하면 설득력이 커질 것 같았다.” 어딘가 모범답안처럼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즈음 사무처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해결을 요구하는 첫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뿐 아니라 대리인이나 상급자까지 나섰다. 사무처 안에서 논란과 토론이 활발하게, 때로는 지난하게 벌어졌다. 사무처지회에서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내부 교육도 시행했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 규칙 제정 활동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권위주의적 일터에선 신고 적어

소방서에서도 불이 나듯이, 어느 조직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신고 건수가 조직 건강성의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모르지 않지만, 애초 공공운수노조에 대한 관심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신고 건수였다. 사건을 대면하는 태도가 개방적일수록 신고 건수가 늘어날 개연성도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몇 건 정도인지 물었다. 서 실장은 “한 해 2~4건 정도”라고 밝혔다. 많은 건가, 적은 건가? 객쩍은 호기심은 거듭 우문을 불러냈다. 사무처지회의 다른 이에게 물었다. “예전에는 사건이 생겨도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못하고 관두는 경우가 있었다. 이제는 문제를 제기할 통로가 생겼다.” 현답이었다.

2019년 7월16일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되고 5년이 지났다. 성급한 예단일지 모르지만, 공공운수노조의 지난 5년은 법의 취지를 일터에서 구현해보기 위해 지도부와 사무처가 기울인 노력과 실험의 시간으로 기록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공공운수노조의 사례가 한국 사회 전체 지형을 대표하지 못하더라도, 일터 전반에서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나타났을 개연성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일단 통계부터 살펴봤다. 직장갑질119가 법 시행 직후인 2019년 3분기에 벌인 직장인 설문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44.5%였다. 2024년 2분기 조사에서는 32%로, 5년 전보다 12.5%포인트 낮아졌다.(<표1> 참조)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그 변화를 ‘감각’의 변화로 짚어냈다. “일단 괴롭힘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졌다고 할까…, 일터 안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괴롭힘 행위에 대해 법을 의식해 스스로 경계하는 비율과 약자 위치인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으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각하는 비율 모두 늘어난 것 같다. 폭력이나 욕설에 대한 상담 요청이 확연히 줄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예전에는 대놓고 욕하던 상사가 요즘에는 면전에서 자꾸 한숨을 쉬는데 이것도 괴롭힘에 해당하느냐는 오픈 채팅 상담이 최근 올라왔다.” 설령 욕설과 한숨이 한갓 표현의 차이에 불과할지라도, 흥미로운 결이 숨어 있을 법했다.

직장갑질119의 다른 정례 조사인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 조사’에서 그 결을 엿볼 수 있다.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30개 문항으로 만들어 점수화한 것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감수성도 높다. A등급(91~100점, ‘인권 존중 직장인’)부터 F등급(60점 이하, ‘갑질 심각 직장인')까지 5단계로 나뉜다. 2023년의 평균 점수는 72.5점으로 C등급(‘평균 갑질 직장인')이었다. 2020년 69.2점, 2021년 71.0점으로 나아지다 2022년(73.8점)보다 뒷걸음쳤다. 상위 관리자(66.1점)와 중간 관리자(68.8점)는 D등급(‘갑질 위험 직장인’), 실무자(73.9점)와 일반 사원(73.8점)은 C등급이었다. 성별 평균은 여성 76.1점, 남성 69.8점이었다.

관리자와 평사원 인식 격차 줄지 않아

배가영 직장갑질119 상근 활동가는 “눈여겨볼 건 관리자와 평사원 간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2023년 조사에서도 ‘급한 일이 생기면 업무시간이 아니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해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문항에 상위 관리자는 55.9점, 일반 사원은 73.1점을 받아 17.2점의 격차가 났다. ‘일을 못하는 직원에게 권고사직이 필요하다'는 문항은 13.7점(상위 관리자 39.0점, 일반 사원 52.7점)의 격차를 유지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더없이 적확하다. 표현의 변화와 속내는 쉽사리 동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행하지 못하는 게 사람의 속내뿐이겠는가.

2024년 7월30일 한 노무사가 오픈채팅방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아직도 한국 사회 일터에서는 21세기와 동행하지 못하는 괴롭힘이 부단히 벌어지고 있다. 2023년 5월22일 강원도 속초시의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에서 일하던 25살 남성 ㄱ씨가 야산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8월부터 그 업체에서 일했던 ㄱ씨는 2023년 3월21일부터 누군가와의 통화를 녹음했다. 일요일을 제외한 54일 동안 40대 직장 상사 ㄴ씨와 711차례 통화(하루 평균 13차례)했다. 심각한 욕설과 협박을 89차례, 일반적인 욕설과 모욕을 232차례 들었다. ㄱ씨뿐 아니라 가족까지 죽이겠다는 협박도 들어 있었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는 4차례에 걸쳐 물리적 폭행을 가한 혐의도 추가로 적시됐다.

ㄱ씨의 첫 직장이었던 이 업체는 구성원이 사장 부부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ㄱ씨와 실무적 관계인 이는 ㄴ씨가 유일했다. ㄱ씨는 철저히 고립돼, 어디에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ㄱ씨는 숨지기 나흘 전 사장 배우자와 면담했는데, 곧바로 ㄴ씨한테서 살해 협박을 들어야 했다. ㄱ씨가 절망 속에 목을 매기 전까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제76조의 3(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 등에 붙인 별칭이다. 노란봉투법으로 널리 알려졌다시피, 근로기준법은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똑같아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22년 한 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국민은 404명이었다. 공공운수노조의 사례는 사람까지 죽어나가는 법의 사각지대 앞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렇다고 공공운수노조의 지난 과정이 고충과 갈등 없이 매끈하기만 했을까. 이는 합리적 의심이다. 괴롭힘은 사용자와 노동자뿐 아니라 동료 노동자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우위적 행위와 비우위적 행위를 두부처럼 나누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괴롭힘 인정과 불인정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서동훈 실장에게 물었다. “반반”이라고 했다. 그는 “인정 결정이 나든 불인정 결정이 나든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조이기에 겪은 어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업무 시간 외에 에스엔에스 지시를 금하는 규칙을 두고 ‘노조 활동가에게 비현실적이다’ ‘이러면 일 못한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우리가 못하면 어떻게 사업장에 모범안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는 설득이 주효했다. 더는 그 규칙을 없애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서동훈 실장의 말이다. 누군가 처음 가면 길이 된다.

그렇다면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의 괴롭힘 인정 비율(50%)은 높은 걸까, 낮은 걸까? 이 우문은 통계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2023년 처리 완료된 9672건에서 검찰 송치 비율은 1.6%, 기소까지 간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법 취지에 비춰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치고 일단 넘어가보자. 과태료 부과 비율이 1.9%이고, 개선 지도 비율도 7.1%인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건 ‘기타’(66.6%)다. 기타는 법 위반이 없는 경우(29.8%)나 진정인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 등(36.5%)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같은 노동 약자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된 셈이다.(<표2> 참조)

괴롭힘 개념 모호해 현장 난맥상?

같은 통계를 놓고 해석은 어지럽게 춤춘다. 사용자단체들은 신고가 오남용되고 있는 유력한 정황이라고 해석한다. 법 시행 5주년을 맞아 2024년 7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패러다임의 전환: 갑질에서 안전으로’ 토론회에서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데 취하하거나 법 위반 없음으로 처리되는 비중도 상당하다는 건 판단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한 허위·과장 등의 신고도 상당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피해자나 다른 근로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까지 살뜰히 덧붙였다.

그러나 직장갑질119의 ‘괴롭힘 이후 신고 경험 추이’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해석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표3> 참조) 첫째,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20년 3분기(12.2%)보다 2024년 2분기(10.3%)의 응답이 외려 낮다. 둘째, 추이적인 등락은 있지만 10% 중반대를 넘어선 적이 한 번도 없다. ‘회사 또는 노조 신고’와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 신고’ 가운데 복수응답을 할 수 있게 해 양쪽을 합산한 비율이기 때문에, 실제 신고한 피해자 비율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셋째, ‘회사 또는 노조 신고’는 2.2%포인트 늘어난 반면,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 신고’는 4.1%포인트나 줄었다. 고용노동부 통계로 오남용을 추론하는 거야말로 해석의 오남용은 아닐까.

물론 어느 누구도 신고의 오남용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연구자나 노동자를 대리해온 노무사 가운데서도 오남용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20년 전부터 전세계 제도를 비교연구해온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 규정하는 괴롭힘의 개념이 모호하게 혼재돼 현장의 난맥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수 국가에서는 일회성만으로 인정되는 해러스먼트(Harassment)와 지속·반복성이 요구되는 불링(Bullying)으로 법제도가 구분돼 있는데, 우리나라 법은 불링 행위에 해러스먼트 기준을 적용한 구조”라는 것이다.

서 연구위원이 2023년 7월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성립기준 및 사업장 모니터링 체계 구축 연구’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자 가운데 피해 경험자는 19.7%, 괴롭힘 신고 경험자는 3.3%, 허위 신고를 당한 경험자는 1.4%, 허위 신고 목격자는 2.4%로 각각 조사됐다고 한다. 그는 “주관적인 인식을 물은데다 실제로도 완전한 허위 신고가 아닌 왜곡이나 과장이 대부분이겠지만,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고 했다. “젊을수록, 여성일수록 허위 신고를 당한 경험이 많은 반면, 고위 직급자는 악성 가해자로 가장 많이 지목되지만 피신고율은 매우 낮고, 중간관리자의 피신고율이 가장 높다는 데 구조적인 심각성이 있다.”

시행 5년이 지난 지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그럴수록 50%라는 공공운수노조의 괴롭힘 신고 인정률은 심상찮게 다가온다. 술이 반 잔밖에 남지 않은 게 아니라, 반 잔이나 채워졌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공공운수노조가 이 정도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다른 노조나 단체와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법제도 보완해 취지에 더 다가가야

공공운수노조에 설치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안영춘 기자

하나. 성별 구분이 없고 장애인과 어린이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운수노조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일 보러 갔을 때 그 차이에 대한 느낌이 왔다. 2021년 이 건물로 이전할 때 회의를 거듭한 끝에 층별 특성에 맞춰 6개 층 가운데 3개 층에 이 화장실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동훈 실장은 “나는 처음에 비효율적이라 생각해서 반대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공간이 보장돼 매우 만족한다”며 “규칙이 시행된 뒤로 동지들의 심리적인 연대감도 강화된 듯하다”고 말했다.

또 하나. 서 실장이 경기도 화성 아리셀 참사 현장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다 말고, “외부에 교육을 가면 늘 소개하는 것”이라며 내민 책상용 다이어리를 보고서도 느낌이 더해졌다. 이 책상용 다이어리는 ‘조직문화 개선 캘린더 굿즈’였는데, 동료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팁이 페이지마다 짧은 글귀와 그림으로 담겨 있었다. 사무처 구성원이 급격히 늘면서 모르는 얼굴이 많아지고 업무마저 급증해 퇴사자도 늘던 2019년에 제작했다고 한다. 다이어리 안에 담긴 건 배려가 연대로 이어지는 경로였다.

이제 나머지 반 잔은 공공운수노조가 아니라 법제도의 보완과 그 취지에 다가가려는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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