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 이어 파리에서도 ‘G.O.A.T’ 김우진에 패한 이우석 “위대한 선수와 맞붙어 영광...언젠가 우진이형 뛰어넘겠다”
6년 전 자카르타에서도 패했고, 6년이 흐른 후 파리에서의 맞대결도 패했다. 그래도 원망은 하지 않는단다. 양궁 역사상 최고의 선수와 슛오프 접전까지 치른 것에 만족한다. 그래도 언젠가 그를 뛰어넘기 위해 다시 활시위를 당길 것을 다짐했다.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의 ‘미스터 텐’ 이우석(27·코오롱엑스텐보이즈) 이야기다.
지난달 29일 열린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이우석은 “개인전에서 4강까지 가면 우진이 형과 만날 수 있다. 4강까지 가는 게 먼저지만, 우진이 형과 맞붙게 되면 봐주지 않겠다. 재밌게 한 번 대결해보고 싶다”며 결의를 불태운 바 있다.
간절이 바랐던 맞대결. 이우석은 김우진을 몰아붙였다. 1세트를 29-28로 앞서며 ‘장군’을 불렀다. 이대로 당하기만 할 김우진이 아니었다. 2세트는 김우진이 3발 연속 10점을 쏘며 ‘멍군’을 외쳤다.
3세트에는 이우석이 3연속 10점을 쐈다. 김우진이 29점을 쏘면서 이우석이 4-2로 앞서나갔다. 4세트는 두 선수 모두 29점을 쏴 1점씩을 나눠가졌다.
5-3으로 이우석이 리드한 채로 돌입한 5세트. 6점을 먼저 따면 이기는 양궁 개인전이기에 이우석은 비기기만 하면 결승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두 발을 10점, 10점을 쏜 김우진의 신기에 가까운 기량 앞에 이우석은 두 번째 화살을 8점을 쏘고말았다. 결국 5세트를 김우진이 29-27로 승리하면서 승부는 딱 한 발로 승패를 가리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먼저 쏜 김우진이 10점과 9점 경계에 꽂히는 10점을 쐈다. 이우석이 확실한 10점만 쏘면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우석의 마지막 화살은 9점이었다. 이우석의 패배였다.
2관왕을 꿈꾸며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이우석의 생애 첫 올림픽은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마무리됐다. 4년 전 열릴 예정이었던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이우석은 다시 치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2020 도쿄에는 나서지 못했다. 3년을 절치부심했지만, 김우진이라는 ‘큰 산’은 아직 이우석에게 승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우석은 6년 전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김우진에게 결정적 패배를 당한 바 있다. 당시 상무 소속의 군인 신분이었던 이우석은 개인전 결승에서 김우진을 만났다. 5세트 마지막 화살에서 한 점 차로 뒤져 은메달을 따 조기 전역 기회를 놓친 바 있다.
자신의 양궁 인생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는 기회마다 김우진에게 당한 패배. 억울할 법도 했지만, 이우석은 후련했다. 이우석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끌어내면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후련했다. 오히려 즐거웠다. 위대한 선수와 맞붙었는데,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졌잖아요. 그래서 원망이나 이런 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우석과 김우진은 슛오프 직전 웃으며 서로의 주먹을 맞대며 인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경기 전부터 “후회 없이 하자”는 말을 나눴다던 둘은 대표팀 생활을 10년 이상 함께 하며 절친한 사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먹인사는 후회없이 쏘자는 무언의 의미였다.
역사와 스포츠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우석이 김우진을 이겨 결승에 올라갔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 이우석은 “제가 금메달을 땄을수도 있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스포츠에 만약이란 건 없으니까요”라며 웃어보였다.
김우진은 금메달을 따낸 뒤 소감으로 “우석이에게 미안하지 않게 금메달을 따서 좋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전해주자 이우석의 눈시울은 약간 붉어졌다. 그는 “우진이형에게 너무 고맙다. 여태까지 같이 훈련해오면서 이 고생을 해왔던걸 서로 안다.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우진이형과 마지막에 시상대에서 같이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듣는데, 살짝 눈물이 날뻔 했다. 지금도 울컥한 건 그때 생각이 나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김우진은 앞선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이제는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단어를 얻었다. 이제는 내가 봐도 고트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우석은 “우진이형이 금메달을 따고 제게 ‘나 이제 고트라고 해도 되겠지?’라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저는 우진이형이 고트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고트인 형을 제가 뛰어넘어서 고트가 되볼게요’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우진이형도 ‘그래, 네가 도전해봐’라고 말해주더라고요”라고 일화를 공개했다.
슬프도록 찬란했던 파리의 8월이 지나면 9월부터 2025년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시작된다. 이제 어엿한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이우석이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훈장이다. 계급장 떼고 선후배들과 또 다시 국가대표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이우석은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걸 제가 잘 알기 때문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음을 기약하며 또 한 걸음 나아가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내년도 국가대표를 향한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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