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사니즘’에 진심이라면, 성장방식 바꿔라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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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지역순회 경선 둘째 날인 지난 7월21일 강원 홍천군 홍천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당 대표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민생 문제가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경선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지금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하며,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다”라고 단언했다. 백번을 들어도 맞는 말이다. 민생은 모든 것에 우선해 정치인이 풀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먹사니즘’ 즉, 민생을 단순히 먹고‘만’ 사는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2023년 한국의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194달러로 일본을 앞섰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통계청에서 발표한 각종 지표를 보면 국민의 삶의 수준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측정한 상대적 빈곤율도 2011년 18.6%에서 2022년 14.9%로 낮아졌다.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도 2013년 0.372에서 2022년 0.324로 낮아졌다. 주관적 삶의 만족도 지표도 대부분 개선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경제지표가 눈에 보이게 좋아졌는데도, 삶의 어려움에 고통받는 사람이 여전히 다수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계속 낮아져 학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0.7대까지 떨어졌고, 0.6대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자살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일부에서는 한국인이 너무 비관적이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지난 10년간 조사 시점 기준으로 ‘어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긍정 정서’의 비율은 높아졌고 ‘어제 얼마나 걱정, 우울감을 느꼈는지’에 대한 ‘부정 정서’의 비율은 감소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낮은 성장률인가? 성장률을 높여 소득이 더 높아지면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위기가 완화될까?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은 긴 가뭄에 단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다음은? 한국 사회를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 앞서 언급한 사회·경제적 위기의 대부분은 한국이 중간소득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지니계수가 경향적으로 높아진 것도, 합계출산율이 초저출산대로 진입한 것도,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진 것도, 부와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벌을 통해 세습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우리가 고소득 국가에 진입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권은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다. 민주화 이후 지난 40여년은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우리가 먹고살 수 있다며 국민을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먹사니즘’이 중요하지만, ‘먹사니즘’이 단순히 더 높은 성장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재명 후보가 출마 선언문에서 밝혔듯이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제대로 된 질문만이 민생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꼭 필요한 민생 대안을 내올 수 있다. 왜 한국 사회를 고소득 국가로 이끈 놀라운 성장이 초저출산, 높은 자살률, 부의 세습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심화시켰는지, 제대로 질문해야 한다. ‘나쁜 일자리를 늘리는 성장이라도, 일자리만 늘리면 좋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지난 40년간 우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왜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국민의 90%가 일하는 중소기업은 점점 더 경쟁력을 잃고 있는지. 왜 우리 대기업은 독일, 일본 등과 같은 제조업 강국과 비교해 숙련노동자의 고용을 줄이고 자동화 기계를 3배 가까이 많이 쓰는지. 세계화의 기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해외 수요에 의존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지. 이 후보가 말하는 ‘먹사니즘’을 위한 성장이 누구를 위한 어떤 성장인지. 지금 논쟁에선 이런 질문들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먹사니즘’에 진심이라면, 성장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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