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 침체 맞아? 반도체는 팔아?… 시장 공포 확산에 증권가도 의견 분분
“허리케인이 고용지표 왜곡 가능성” 주장에
“상반기부터 고용 둔화 신호 있었어” 반박
시장 주도해온 반도체株 비중 의견도 갈려
순항하는 듯했던 미국 경제가 순식간에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위기가 급변한 탓인지 이를 바라보는 국내 증권가 시선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경기 침체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주장과 이미 경기 침체에 가까워졌다는 주장, 반도체 등 기존 주도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이익 모멘텀이 좋기에 비중 축소는 안 된다는 주장 등이 얽히고설켰다. 전문가조차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 투자자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 경기 침체 논할 때 아냐 vs 고용 추세적 둔화가 신호
5일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최근 미국 경기 침체 신호에 대한 해석과 전망 등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앞서 미 노동부는 지난달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전월 대비 11만4000개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 예상치(18만5000개)를 한참 밑돈 수치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4.3% 상승했다. 지난 4월 3.8%였던 미 실업률은 7월까지 계속 올랐다. 4.3%는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와 관련해 하나증권과 대신증권 등은 현시점에서 경기 침체를 논하긴 어렵다고 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고용지표 부진은 7월 8일 미 텍사스 등을 강타한 허리케인 베릴의 영향이 반영됐을 수 있다”며 “나쁜 날씨 때문에 일하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43만6000명으로, 전월(5만9000명)보다 7배 이상 폭증했다”고 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전년 동기 대비 1.7%”라며 “이를 저점으로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또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샴의 법칙(Sahm’s rule)을 들어 경기 침체 우려를 확대 재생산하지만, 샴의 법칙은 예측 지표가 아니라 과거 통계에 기반을 둔 경험 규칙일 뿐”이라며 “추후 경기 침체가 올 수는 있지만, 몇 개 지표만으로 임박했다고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했다. 샴의 법칙은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이 1년 전 저점보다 0.5%포인트(p) 이상 오르면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번 7월 고용보고서 내용을 반영하면 0.53%p로 샴의 법칙 구간에 포함된다.
DB금융투자는 그러나 미국 고용시장의 모멘텀은 한 번 둔화하기 시작하면 추세적으로 악화하는 일이 많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민간소비가 국가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민간소비의 60%를 임금소득이 지탱한다”며 “이와 더불어 유연한 고용 제도를 두고 있다”고 했다. 즉 ‘고용→임금소득→소비→다시 고용’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출발점인 고용이 흔들리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 고용시장 붕괴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일정 시점부터 미 고용시장 모멘텀이 둔화한다는 신호가 상당했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이를 언급했다”며 “시간이 흘러 고용시장은 현재처럼 급격히 악화했다”고 했다. 그는 “수리적으로만 보면 고용시장으로부터 측정하는 미국의 경기는 침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증시 하락하면 반도체 버려야 vs 이익 모멘텀 가장 좋아
변동성 구간에서 그간 시장 상승을 이끌어온 주도주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DB금융투자는 주식시장 하락이 시작되면 주도주와는 이별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인공지능(AI) 관련주가 주도주였다. 한국 증시에선 AI 칩과 연관된 반도체 업종이 주도주로 군림해왔다.
강현기 연구원은 “주도주는 주식시장 상승 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지만, 하락 시에는 가장 큰 낙폭을 보여준다”며 “경기가 부진하면 첨단기술로 이뤄진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에 대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교보증권은 포트폴리오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란 사실에는 공감하면서도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주도 업종 비중을 축소하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 순으로 이익 모멘텀이 좋고, 이 둘을 제외한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이익 컨센서스가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포트폴리오에서 무리하게 주도주를 편출하기보다는 다른 업종을 편입해 변동성과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주도주와 상관관계가 낮거나 주도주 하락 시 상승 모멘텀이 있는 업종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반도체 비중이 높으면 조선과 은행 업종으로, 자동차 비중이 높으면 건강관리와 소프트웨어 업종으로 리스크를 헤지(Hedge·위험 회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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