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이야기] 다중우주로 떠나는 피서
여름은 으레 덥다고 하지만, 요즘 날씨는 속된 말로 찜통더위다. 전세계적인 기후 위기 탓에 1주일 넘게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넘나들고, 비도 종종 오는데도 시원해질 겨를이 없다. 이 와중에 아는 선배가 호주에서 1년 동안 산다고 한다. 아, 호주는 지금 한겨울이겠지.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더울 때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상상을 하듯,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 문제가 해결된 상황을 자연스레 상상한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면? 판타지에 나오는 것처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싶지 않을까? 놀랍게도 필자가 연구하는 천문학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판타지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다중우주, 또는 멀티버스(multiverse)다.
우주는 영어로 유니버스(universe)라고 하는데, 앞에 붙은 '유니'(uni-)는 하나를 뜻한다. 대신 여럿을 뜻하는 '멀티'(multi-)를 붙이면, 여러 우주를 뜻하는 멀티버스, 다중우주란 단어가 된다. 최근 마블 영화에서 등장하는 멀티버스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도 힘의 크기나 물질의 종류 같은 특징이 조금씩 다른 우주가 무한히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중우주는 우주의 시작, 빅뱅(big bang)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약 138억 년 전에는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든 것이 마침표보다 더 작은 공간에 뭉쳐있었다. 이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수수께끼지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텅 빈 작은 공간에도 매우 낮은 확률로 상당히 큰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깜짝 나타난 에너지는 금방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가 너무 크면, 사라지기 전에 상대성이론에 의해 공간이 엄청나게 커진다. 그러면 에너지는 더 이상 사라질 수 없고, 커진 공간은 결국 우리 우주가 된다.
만약 우리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면,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로또에 내가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많은 사람이 로또를 사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주 하나가 새로 만들어질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한 번 만들어지면 공간이 엄청나게 커진다. 그래서 결국 무한히 많은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주의 특징이 하나로 정해져야 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 모든 다중우주가 우리 우주와는 특징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이론이 그럴듯해도, 우리 우주에 사는 우리는 그 바깥에 있는 다중우주를 절대 볼 수 없다. 하지만 판타지를 꿈꾸는 이유는 그만큼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인 법. 우리 우주 전체 에너지의 70%를 차지하는 정체불명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바로 그 문제다.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유력했던 암흑에너지 이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의 암흑에너지 값은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값보다 무려 10………0(1 다음에 0이 120개) 배 작다. 하지만 다중우주를 받아들이면, 아무리 물건을 잘 만드는 공장에서도 아주 가끔 불량품이 나오듯, 우리 우주가 이상한 암흑에너지 값을 가져도 별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 천문탐사인 DESI에서 암흑에너지의 성질이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 다른 것 같다는 결과를 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우리 우주의 암흑에너지 값과 자연스러운 이론값이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이상 다중우주에 기대지 않아도 문제가 풀린다. 그래도 우리에게 다중우주가 꼭 필요할까.
호주로 이사 간 선배로부터, 너무 추워서 힘들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상상은 자유지만, 상상한 판타지가 문제를 꼭 풀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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