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능성을 봤다" 3년 전 '그만하고 싶다' 던 '女 복싱 첫 메달' 임애지, 이제는 4년 뒤를 꿈꾸다[올림픽]
[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파리올림픽이요? 제 가능성을 본 무대에요."
임애지(25·화순군청)는 환하게 웃었다. 임애지는 4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년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에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에 2대3으로 판정패했다. 앞서 열린 8강전에서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에 3대2로 판정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오른 임애지는 이미 동메달을 확보했다. 올림픽 복싱은 따로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준결승에서 패배한 선수 모두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한국 여자 복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임애지는 내친김에 색깔을 금빛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임애지는 "전략은 상대 선수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들어오더라"면서 "내가 상대를 분석한 만큼, 상대도 나를 분석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판정에서 밀린 것에 대해서는 "판정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는 "원래는 적극적으로 안 하는 게 전략이었는데, 1라운드 판정이 밀려서 적극적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아크바시는 2022년 국제복싱협회(IBA) 이스탄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로 세계 챔피언이다. 임애지와는 인연이 있다. 과거 스파링으로 붙어본 사이다. 임애지는 "그 선수와 스파링할 때마다 울었다. 맞아서 멍도 들고, 상처도 났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께 '쟤랑 하기 싫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래도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내가 경기에서 이긴다'고 자신했다. 비록 졌지만, 다시 붙어보고 싶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어 "100점 만점에 60점짜리 경기다.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아쉽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다음에는 그 선수가 '애지랑 만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무도 예상 못한 메달이었다. 한국 복싱은 암흑기였다. 2016년 리우 대회, 직전 도쿄 대회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남자는 아예 이번 대회 포함, 두 대회 연속으로 출전 조차 못했다. 임애지가 멋지게 흐름을 바꿨다. 그는 2012년 런던 대회 한순철(남자 60㎏급 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메달을 선사했다. 임애지는 공교롭게도 한순철 코치와 호흡을 맞춰 역사를 썼다. 임애지는 개막 전 "한순철 코치님이 우리 여자 복싱 선수들을 정말 많이 봐주신 분이다. 한 코치님이 '너희는 나처럼 실패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은메달도 멋지다'고 말했다. 우리한테 금메달 만들어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약속을 지켰다. 한 코치는 "내가 딸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임애지는 대회 전 "도쿄 올림픽 때는 '내 인생에 딱 한 번만 있을 경기'라고 생각했다면, 파리에서는 '내 인생에 언제 올지 모르는 축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애지는 그의 말대로 축제를 즐겼다. 그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재미있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이겨서 짜릿했다. 오늘처럼 관중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짜릿했고,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응원받을 수 있나 싶더라"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없다. 실전에서 더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한국 가면 혼자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임애지는 파리올림픽을 "내 가능성을 본 무대"라고 정의했다. 3년 전 도쿄 대회에서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던 그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대해서는 걱정 보다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임애지는 "훈련하다 보면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코치님께 '남은 4년도 함께 하실꺼죠'라고 묻고 싶다"고 웃었다. 한 코치도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 이번에 애지가 동메달을 땄으니 다음에는 금메달로 했으면 한다. 다시 한번 더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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