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방통위’ 고쳐 쓰기도 어렵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 상임위원은 지난 7월 31일 임명되자마자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6명을 선임하고, KBS 이사 7명을 추천했다. 명색이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통위에서 여권 성향 위원 2명(전체 상임위원 정원 5명)만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이를 결정했다.
국회에서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기만 하면, 2명의 장관급 위원장(이동관·김홍일)과 1명의 직무대행(이상인)이 도망치듯 달아나 버렸다. 사직을 재가하는 대통령(윤석열)이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국회나 헌법기관의 품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진숙 위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방통위는 며칠간 위원이 한 명도 없는 ‘0인 체제’였다. 국가의 방송·통신 업무를 맡는 방통위가 윤석열 정부에서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야권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소추안이 지난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임명-탄핵소추-임명’이라는 되돌이표가 국민에게는 마치 삼류 코미디처럼 느껴질 법하다.
‘방송통신 정치위원회’ 불가피
야당은 ‘2인 방통위’ 꼼수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방통위 회의를 4인 이상의 위원 출석 개의,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토록 하는 ‘방통위 설치 및 운영법 개정안’을 지난 7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른바 ‘방송 4법’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의결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는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강원용 방송위’로 방송 독립의 터전을 닦았다. 2008년 방송위에서 방통위로 전환한 이후 여야의 갈등은 있었지만 합의제 기구의 틀은 겉으로나마 유지됐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그나마 준수하게 운영되던 방통위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합의제를 대놓고 거부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해버렸다”고 비판했다. ‘2인 방통위’ 체제의 독단적인 결정이 대표적이다.
방통위 체계를 개선하더라도 이미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이상 고쳐 운영하기에는 너무나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예전의 합의제 체제로 설사 돌아간다 한들 지금의 균열은 회복이 안 될 정도”라고 진단했다. 태생적인 한계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 2인, 국회 3인(여당 1인·야당 2인) 추천으로 임명되는 방통위의 상임위원 구조상 2008년 출범 후 국회 바깥의 ‘제2의 전장’이자 축소판이 돼버렸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공영방송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다툼만 벌어졌다. 송경재 상지대 교수(민언련 정책위원)는 “정치인들이 들어와 거수기 역할을 하고 단순 다수제로 결정하는 ‘방송통신 정치위원회’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여야가 장·차관급 위원장과 위원을 추천하는 제도가 여야 대리인의 싸움터를 마련해준 꼴이 된 셈이다.
송경재 교수는 지난해 말 민언련 특별칼럼을 통해 ‘추천방식을 언론 유관단체, 시민단체의 참여로 늘리는 방법’, ‘정치권 추천 인사가 다수가 될 수 없도록 입법부 산하 미디어위원회로 확대 개편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핵심은 방통위의 객관성을 강화하고 공정한 미디어 정책을 제시할 거버넌스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는 “우선 대통령의 영향력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처럼 전문가 공익위원들의 주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 합의를 강제할 수 있는 진일보한 개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을 다루는 중요 기관인 만큼 헌법 개정 때 방통위를 독립기구로 규정하는 위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서중 교수는 “방송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방통위가 헌법·법률상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립기구로 위상 변화 필요
방통위원에게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토록 하는 조항을 법안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방통위 설치법 제1조(목적)에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방송의 독립성은 명문 규정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방송의 독립성이 문화로 정착되지 않는다면, 방통위원의 정치적 독립성 유지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독립성을 어기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윈회(방심위)도 방통위만큼이나 망가졌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민원 사주 의혹을 받고 있는 데다, 위원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해 비판을 받아 왔다. 또한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 등 정부 비판에 무리하게 법정 제재를 결정하기도 했다. 류 위원장은 임기가 다하자 지난 7월 23일 기습적으로 회의를 열어 ‘셀프 연임’을 결정했다. ‘2인 방통위’와 ‘민원 사주 의혹 방심위원장’으로 방송 통신 정책의 중립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참에 통신 업무를 방통위에서 분리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쟁으로 통신 사업 관련 업무까지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2인 방통위’는 방송 관련 현안만 다루기에도 바빴다. 송 교수는 “방통위에 통신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면서 “2008년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합쳐지면서 방통위가 출범했지만 방송 쪽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신 분야를 제외한 미디어위원회로 재편하고 직능단체 전문가들이 주체가 돼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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