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사갈 거요? 금메달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양궁 ‘G.O.A.T’ 김우진만이 할 수 있는 ‘스웩’ [파리 2024]
남정훈 2024. 8. 5. 06:02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전이 열린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 김우진(32·청주시청)과 브래디 엘리슨(미국)은 5세트까지 5-5로 팽팽히 맞섰다. 4세트까지 3-5로 밀려 패색이 짙었던 김우진은 5세트를 29-27로 잡고 승부를 딱 한 발로 가리는 슛오프로 끌고 갔다.
김우진의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10점과 9점 라인 경계지만, 미세하게 10점 라인 안쪽에 꽂혔다. 불안했다. 이날 엘리슨이 결승에서 보여준 기량이라면 10점 정중앙에 꽂아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 그러나 엘리슨의 화살도 10점과 9점 라인 경계에 꽂혔다. 김우진의 화살보다는 9점에 더 가까워 판독에 들어갔고, 10점으로 판독됐다.
이제 남은 것은 과녁 정중앙으로부터의 거리 재기. 판독 결과, 김우진의 화살은 과녁 정중앙으로부터 55.8㎜가 떨어진 것으로 판독됐다. 엘리슨은 60.7㎜였다. 불과 4.9㎜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엇갈렸다. 김우진의 금메달이자 2024 파리 올림픽 3관왕 등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2016 리우부터 2020 도쿄, 2024 파리까지 남자 단체전 3연패와 2024 파리 혼성 단체전 금메달까지. 올림픽 금메달만 4개를 따낸 김우진은 현역 세계 최고의 궁사로 꼽히지만,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올림픽 개인전에선 금메달은 고사하고 동메달조차 없다는 것. 올림픽 첫 출전이었던 2016 리우에선 32강에서 조기 탈락했고, 2020 도쿄에선 8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랬던 김우진은 이번 금메달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약점을 지웠다. 한국 남자 양궁 선수 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도 이제 김우진의 차지가 됐다.
김우진 역시 이제 자신이 양궁의 ‘G.O.A.T’(Greatest Of All Time)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이제 ‘고트’라는 단어를 얻었다”라면서도 쑥쓰러워했다. 동메달을 따낸 이우석의 얘기에 따르면, 김우진이 이우석에게 “우석아, 이제 형 ‘고트’해도 되지?”라고 물었고, 이우석은 “형, 고트 맞죠. 저는 그럼 그 고트를 뛰어넘어보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고.
4.9mm차이로 갈린 슛오프 승부. 김우진은 판독 전에 이미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김우진은 “제 화살은 10점 안쪽 라인에 박혀있었고, 엘리슨 선수의 화살은 10점 바깥쪽 라인에 박혀있었다. 비교 후에 정확히 알고 나서 감독님과 진하게 포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번 올림픽 내내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를 말했던 김우진. 슛오프 때고 그랬을까. 김우진은 “슛오프 때는 왔다갔다 하더라고요. 그래도 최대한 냉정하려고 했는데, 평소보단 50% 정도였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금메달을 따낸 후 김우진은 관중석을 향해서 큰절을 올렸다. 이유를 묻자 “한국에서 오신 많은 팬분들과 현지 교민분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한국 양궁 대표팀이 전 종목을 석권하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했다. 감사하다는 의미로 절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인전 금메달을 통해 김우진은 올림픽 통산 5개의 금메달로 기존 김수녕(양궁), 진종오(사격), 전이경(쇼트트랙)이 보유하고 있던 금메달 4개를 넘어서며 신기록을 세웠다. 이에 대해 김우진은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됐다”면서도 “저는 앞으로도 더 나아가고 싶다. 은퇴 계획이 없다. 4년 뒤에 있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도 노력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오늘 딴 메달은 오늘까지만 즐기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이력이나 전관예우, 계급장은 떼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그럼에도 김우진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2013년을 제외하면 매년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있다. 그야말로 ‘꾸준함의 아이콘’이라 불러될 정도다. 김우진은 “제가 올림픽 금메달 3개를 땄다고 해서 저희가 운동하는 건 바뀌지가 않는다. 물론 대우는 좀 바뀌겠지만, 제가 양궁을 한다는 것 자체는 바뀌지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메달을 딴 것에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폼을 찾아서 계속 나아간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메달을 땄다고 해서 젖어있지 말아라. 해가 뜨면 마른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제 파리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친 김우진. 문화, 예술, 패션, 명품의 도시인 파리답게 아내를 비롯한 지인들의 ‘이것 좀 사다달라’라는 주문사항이 있을 법 하다. 이에 대해 묻자 김우진은 금메달을 들어보이며 “이거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와이프에게 사갈 것은 이미 다 따낸 것 같습니다. 잘 챙겨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금메달 3개를 따낸 자만이 할 수 있는 ‘스웩’이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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