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 기로에 선 K무역]⑤“역동적이고 기술 기반인 韓, ‘혁신 중시’ 스위스의 훌륭한 파트너”

민서연 기자 2024. 8.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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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중국의 과잉 생산 억제를 겨냥한 서방의 압박이 유럽연합(EU)으로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해 온 한국으로선 전 세계를 휩쓰는 보호무역 기조가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등 단일 경제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끊고, 수출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주요 수출입국을 중심으로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어떻게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새로운 수출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2023년은 대한민국과 스위스가 교류를 시작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71년 상호 투자 및 보호협약부터 1980년 이중과세방지협약, 2006년에는 스위스가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한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등 꽤 오랜 기간 동안 한국과 교류를 이어왔다.

스위스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인당 명목 GDP는 세계 1위를 넘본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가운데에 위치한 스위스는 유럽의 중심부라는 지리적 이점과 국토의 75%가 산과 호수, 알프스 산맥이라는 천혜의 자연을 내세워 발달한 관광 산업과 시계 산업으로 대표되지만, 사실 혁신과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의 거점기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유엔 산하 세계 지적재산권기구(WIPO)가 매년 평가해 발표하는 세계 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GII) 순위에서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이 2위, 스웨덴이 3위, 한국은 6위로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GDP의 3%에 달하는 금액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세계 수준의 대학과 연구기관과 장벽 없이 협력하고 있는 덕분이다.

스위스 대사관과 투자청은 한국과의 교류는 물론 한국의 경쟁력있는 기업과 기술에 관심이 높았다. 삼성전자와 HD현대일렉트릭부터 세신정밀, 노을, 코리안리재보험까지 지난해 기준 40여개의 한국 기업이 스위스에서 법인을 세우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안드레아 클레멘티(Andrea Clementi) 스위스 무역투자청 대표를 만나 양국의 교류와 시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드레아 클레멘티 스위스 무역투자청 대표./스위스대사관 제공

─무역과 기술 교류 등의 분야에서 한국은 스위스에게 어떤 나라인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기술적으로 발전된 경제를 가진 나라다. 여러분야에서 스위스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하이테크 산업과 생명공학 등 스위스가 추구하는 혁신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무역 분야에서 한국 시장은 고품질과 럭셔리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 기대가 되는 국가다.

무역 측면에서 보면 스위스는 의약품, 화학제품, 기계류, 럭셔리 시계 등 고가치의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스위스와 한국 간 무역 규모는 57억7000만 스위스 프랑(약 9조46억원)에 달했다. 이중 의약품의 비중이 가장 큰데, 한국에서 스위스 의료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반대로 스위스는 한국으로부터 전자제품과 자동차, 기계류를 주로 수입하고 있는데 양국 경제에 상호 이익이 되는 무역 파트너라고 볼 수 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의 최대 수입 품목은 시계다. 한국에서 스위스 시계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에서 스위스 시계의 인기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고가 시계에 대한 수요는 지난 5년간 특히 더 증가했는데, 우선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스위스 시계의 고품질과 상징성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메이드 인 스위스’ 라벨은 신뢰성과 혁신,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최근에는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가처분 소득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럭셔리 제품에 대한 소비도 크게 늘었다. 이는 자연스레 성공과 우아함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스위스 시계 수요로 이어졌다.

─바이오 테크 산업은 스위스 경제의 주요 동력이다. 스위스가 생명과학과 바이오 테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몇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우선 스위스는 ETH 취리히, EPFL 등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 기관들과 여러 전문 연구 센터들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강력하다. 이는 혁신을 촉진하고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모은다. 스위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지출이 높은 국가인데, GDP의 3% 이상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사용한다. 또한 간소화된 규제 환경이 바이오테크와 제약 개발의 혁신을 촉진한다. 스위스의 관련 규제는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육 체계도 하나의 요소인데, 생명과학 분야에서 학문과 실무를 병행하는 이원화 교육 시스템을 통해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계속해서 배출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스위스의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정치적 안정성, 세금 혜택 등 바이오테크 기업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노바티스(Norvatis)와 로슈(Roche) 등 주요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투자와 협력를 주도해 신생 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한미약품 스위스 바젤 이노베이션 파크(Switzerland Innovation Park·SIP) 전경. /한미약품

─바이오테크와 더불어 스위스는 수소 산업으로도 잘 알려진 국가인데, 수소 산업이 발달한 국가는 손에 꼽는다.

스위스 연방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특히 수소는 1813년부터 스위스에서 연구해온 대체 에너지로서, 스위스는 수소 발전을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 그리고 스위스의 풍부한 천연 자원과 수력자원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여러 스위스 기업들이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도 탄소 저감을 위해 수소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쉽지 않다. 다른 대체에너지보다 수소 에너지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수소 에너지 개발은 여러 어려운 과제들이 존재한다. 우선 수소의 생산과 유통에 비용이 크다. 청정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인 전기분해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며, 이는 화석 연료나 다른 재생 에너지보다도 비싼 생산비용이다. 또한 수소를 저장하고 운송하는 인프라를 갖추는데도 많은 비용이 든다. 이를 생산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수적인데 아직 스위스마저도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대중의 시각에서도 수소는 다른 대체에너지들보다 낯설다. 이는 기존 에너지원에 익숙한 산업계나 소비자들로부터 회의적인 반응이나 저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캠페인이나 교육 등의 인식개선책도 요구된다.

─한국에서는 현대차가 수소개발에 집중하고 있는데 스위스와의 협력을 통해 수소 전기트럭 엑시언트(Xcient) 같은 성과를 냈다. 스위스와 현대차의 목표는 무엇이고, 다른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도 있는지 궁금하다.

스위스와 현대차의 파트너십은 수소 산업 분야의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탄탄한 인프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열정이 이 협력을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2019년에 H2 에너지라는 스위스기업과 함께 현대 하이드로젠 모빌리티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했고 수소 가치 사슬 전반을 주관하고 있다. 현대차의 수소트럭은 최근까지 스위스에서 총 1000만 킬로미터의 누적주행거리를 달성했는데, 이를 통해 수소 연료전지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제 남은 목표는 수소 에너지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며 비용을 절감하며, 필요 인프라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대차 외에도 한국 기업들은 스위스 수소산업계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고,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예컨대 스위스 비즈니스 허브 코리아는 다음달 말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한국 최대 수소산업 전시회인 ‘H2 미트(H2 MEET)’에서 첫 스위스관을 선보인다. 여기서는 엔드레스 하우저, 버카트 컴프레션, 오이겐자이츠 등 관련 기업들이 참여해 수소 산업계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구축할 예정이다.

스위스에서 운행 중인 현대차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현대차 제공

─한국 기업들이 스위스 정부나 스위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지원이 있다면.

스위스는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크지 않은 사업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무역과 사업확장, 유럽 시장에 접근하는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다. 스위스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세금 혜택과 연구 개발 지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스위스의 자유로운 노동법과 숙련된 인력들이 있기에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기도 용이할 것이다.

수소산업과 관련해서 스위스에서 사업하고 싶은 한국 기업이 있다면 또 다른 혜택들이 주어진다. 스위스는 특히 수소 기술 분야에서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연방 에너지청(SFOE)이 주도하는 여러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금도 여러 수소 프로젝트들이 지원받고 있으며 인프라 구축과 파일럿 프로젝트에도 자금이 지원된다. 이외에도 첨단 수소 기술과 인프라 개발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스위스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상호 이익과 기술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 있다.

─스위스 정부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나, 유망한 산업이나 제품이 있다면.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특정 산업 분야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 스위스 정부는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바텀 업’ 접근 방식을 보조하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주요 유망 산업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바이오테크와 제약, 수소 및 재생 에너지 외에도 첨단 제조업, 디지털 및 ICT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스위스 이노베이션 파크를 통해 다양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스타트업과 전통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혁신 네트워킹 구축을 촉진하고 있다.

─다만 스위스 경제가 저성장을 겪고 있다는 스위스 경제부(SECO)의 발표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에게 스위스가 매력적인 사업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가.

스위스는 올해 약 1.2% 성장률로 유럽 평균에 근접한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인플레이션율도 약 2%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오늘 인터뷰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요소를 통해 분명히 강점있는 사업지라고 말할 수 있다. 안정적인 경제와 정치환경, 높은 혁신 지수와 고도로 숙련된 인력은 경제 성장과 무관하게 스위스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스위스의 고도로 발달한 인프라와 자유로운 노동법, 유리한 세금 체계와 강력한 지적 재산권 보호 제도가 스위스에 자리잡는 한국 기업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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