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성매매 되나요”…손님인줄 알았는데 경찰, 함정수사 법원 판단은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8. 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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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위장하고 함정수사한 경찰
피의자들 “위법한 수사” 호소
법원 “이미 범죄의사 있어 유죄”
함정수사 판단 통일기준 없어
판사 재량에 달려 판결 제각각
[사진 = 픽사베이]
서울 종로구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업주 A씨는 지난해 여름 모텔을 방문한 한 손님이 성매매 가능 여부를 물어 현금을 받고 성매매 여성을 알선해줬다. 그런데 손님은 단속에 나선 경찰이었다.

A씨는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됐다. A씨 변호인은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않았다. 4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1심 법원은 A씨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알선 등)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A씨가 유죄라고 판단한 이유는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범의유발형’이 아닌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로 봤기 때문이다. 범의유발형은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후 체포하는 수사 방식, 기회제공형은 수사기관이 이미 범죄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실행에 옮길 기회를 제공하는 수사 방식을 뜻한다.

대법원은 현재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만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범의를 가지지 않은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을 써서 범의를 유발한 뒤 범죄인을 검거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으로 보고 있다. 본래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범죄를 교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만큼 이를 통해 확보한 증거 등은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우 피의자에 대한 공소 제기도 무효가 될 수 있다.

A씨측은 이 사건 수사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인 동시에 단속경찰관이 실제 성매매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불능미수(범죄를 실행했지만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인 만큼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경선 판사는 단속경찰관이 A씨에게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평소 경찰이 여러 차례 이 사건 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력이 있는 점, 사건 당일 단속경찰관이 “대실과 이모님 서비스가 되느냐”고 묻자 A씨가 여성의 나이와 신체 특징을 설명해 준 점 등을 종합하면 경찰이 성매매 알선에 대한 범의가 없는 A씨에게 사술이나 계략을 써서 이 사건 범행을 유발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사는 “성매매 알선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사자가 실제로 성매매를 하거나 서로 대면해야 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A씨가 경찰관에게 방을 제공하고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기로까지 약속한 이상 성매매 알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함정수사는 음지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범죄에 대해 주로 이뤄진다. 마약과 성매매 등이 대표적이다. 증거 확보가 중요한 이들 범죄는 신고에 의존해서는 효과적인 수사를 할 수 없는 만큼 수사기관은 함정수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함정수사의 위법성에 대한 법원 판단이 제각각이고 담당 판사 재량에 따라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등 통일된 규정이 없어 하급심에서 판단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와 수사기관은 함정수사의 위법성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간 지난한 법정다툼을 이어가야 한다.

실제로 의정부지법은 2019년 4월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관의 요청으로 여성도우미를 불러주고 ‘2차 비용’으로 현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유흥주점 직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역시 유흥주점 직원은 함정수사였다고 주장했는데, 2심은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관이 실제 성을 매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매매알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앞선 A씨 사건에서는 판사가 경찰관이 실제 성매수를 할 의사가 없었더라도 성매매알선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의정부지법은 경찰관의 성매수 의지가 없었던 만큼 해당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엇갈린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함정수사라도 사건 상황이 다 달라서 법원이 당장 위법성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회제공형 함정수사가 허용된 지 아직 얼마 안 된 만큼 사례가 좀 더 쌓여 법원의 양형기준이 좀 더 구체화되면 위법성을 판단하는 판사 재량의 범위도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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