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잘 맞지”… 수행평가로 총 잡은 소녀, 8년 만에 ‘금빛 총성’ [파리 2024]
중1 때 처음 접한 뒤로 인생 바뀌어
대담하고 쿨한 성격 ‘사격 안성맞춤’
생애 첫 올림픽서 슛오프 접전 끝에
침착하게 경기 펼쳐 세계 정상 올라
“파리는 저의 시작, 더 높이 오를 것”
전북 남원 하늘중학교 1학년이었던 2016년, 한 소녀는 수행평가로 사격을 경험했다. 우연한 계기로 접한 사격은 그 소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처음 총을 잡은 후 8년이 지나 그 소녀는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들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사수’로 성장했다. 사격 여자 25m 권총의 양지인(21·한국체대) 이야기다.
금빛 미소 양지인이 3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25m 권총 결선에서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샤토루=남정탁 기자 |
공기권총 10m 개인전 은메달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 하나로 전 세계에 시크한 매력을 뽐내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예지(32·임실군청)는 원래 주 종목이 25m 권총이지만, 장기인 급사 도중 한 발을 3초가 지난 뒤에 쏴 0점 처리되면서 결선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25m 권총 결선은 오로지 급사로만 치러진다. 10.2점 이상을 쏴야만 1점이 올라가고, 10.2점 미만일 경우 표적을 놓친 것으로 보고 0점 처리된다. 8명의 선수는 일제히 한 시리즈에 5발씩 총 3시리즈에서 15발을 사격하고, 이후 한 시리즈마다 최하위가 탈락한다.
초반부터 선두로 나선 양지인은 마지막 두 번의 시리즈를 남겼을 때 30점으로 여전히 선두를 유지했다. 카미유 예제예프스키(프랑스)가 29점, 머요르 베로니커(헝가리)가 28점이 되어 양지인은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9번째 시리즈에서 양지인은 2발을 놓쳤고, 예제예프스키가 4발을 맞혀 둘은 33점으로 금메달을 결정하기 위한 최종 시리즈에 돌입했다. 머요르는 31점으로 동메달을 확정했다.
10시리즈에서 양지인과 예제예프스키는 일제히 4발을 맞혀 37점 동점으로 금메달을 가리기 위한 슛오프에 들어갔다. 슛오프에서 양지인은 침착하게 4발을 맞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예제예프스키는 1발에 그쳐 은메달을 가져갔다.
양지인은 사격 대표팀 내에서 기복 없고, 대담하며 쿨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스스로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대충 사는 것’을 꼽는다. 좌우명 역시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적을 정도다. 지난 일을 빨리 잊어버리고 평정심을 찾는 ‘멘털 스포츠’인 사격에는 안성맞춤인 성격이다. 그런 양지인에게도 생애 첫 올림픽 무대는 긴장되고 떨렸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믹스트존에 들어선 양지인은 “너무 긴장해서 경기장 나오는 데 속이 안 좋더라. 심장이 너무 떨려서 ‘이게 올림픽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복 없고 대담한 성격은 슛오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양지인은 “슛오프 가서 엄청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그게 헛되지 않도록 했다”면서 “슛오프 도중에는 상대가 한 발씩 쏘는 결과가 저절로 눈이 가더라. ‘제발 한 발만 (놓쳐라)’ 이런 마음으로 경기를 봤다”고 말했다.
양지인은 시상식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았다. 그는 “파리 (올림픽)에 태극기를 올려서 정말 기쁘다. 솔직히 부담 많이 됐는데, 태극기가 올라가니까 싹 씻겨 내려가더라”며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내서 행복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금메달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도 열심히 도전하겠다. 이곳이 저의 시작이라고 봐달라”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이번 대회 사격이 파리가 아닌 샤토루에서 경기가 펼쳐진 게 양지인이 오로지 사격에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 파리를 즐기지 못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양지인은 “샤토루에서 저만 행복하면 됐다. 그래도 파리에 가면 예쁜 것도 사고, 구경도 하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조금은 내려놓고 둘러보고 올라가야겠다”며 웃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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