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경제안보 시대 ‘농업의 지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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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地政學)이 땅의 지도를 놓고 군사를 무기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전략이라면 지경학(地經學)은 경제를 무기로 이용하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지경학은 '경제안보' '힘의 경제학(power economics)'과 같은 뜻이다.
농업을, 특히 식량을 무기로 이용하는 전략이면 '농업의 지경학' 또는 '지농학(地農學)'이 될 것이다.
지경학 7개조는 경제안보 7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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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자율성·불가결성 필요
특정국에 과한 의존 지양하고
경쟁력·안전공급망 확보해야
기후변화·AI기술로 판도 변해
‘잠재적 비교우위’ 점할 기회로
지정학(地政學)이 땅의 지도를 놓고 군사를 무기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전략이라면 지경학(地經學)은 경제를 무기로 이용하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지경학은 ‘경제안보’ ‘힘의 경제학(power economics)’과 같은 뜻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기다. 땅은 변함이 없어도 무기는 진화하고 있다. 국방에서 경제, 또 기술로의 확장이 그렇다. 기술도 경제라면 ‘기술의 지경학’이고, 기술이 독립 무기라면 ‘지기학(地技學)’이다. 농업을, 특히 식량을 무기로 이용하는 전략이면 ‘농업의 지경학’ 또는 ‘지농학(地農學)’이 될 것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 신문’ 주필이 ‘지정학 시대 리터러시(literacy)’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경학 7개조’를 제시했다.
▲“일본은 경제안보 적자국이다.”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 법의 지배에 기초한 규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시장은 경제안보 적자국 입장에서 장기적 안전판이 된다.” ▲“무역의 상호의존성이 평화를 약속해주지 않는다. 상호의존성의 불균형이 언제든 무기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국산(國産)주의로는 경제안보를 보장할 수 없고 동맹국·동지국·우호국과의 연대가 불가결하다.” ▲“경제안보는 가장 취약한 고리의 강함 이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경제안보를 지키려면 차세대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서 앞서가야 한다.” ▲“경제안보는 전략적 자율성,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가 핵심이고, 정부와 민간의 전략적 대화가 중요하다.”
지경학 7개조는 경제안보 7개조다.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고, ‘경제안보’를 ‘식량안보’로 바꿔도 틀릴 게 전혀 없다. 식량안보 시대 농업의 지경학이 현실로 다가왔다.
경제안보와 마찬가지로 식량안보의 두 기둥은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이다. 전략적 자율성은 특정국에 식량을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특히 “식량안보는 가장 취약한 고리의 강함 이상으로 강해질 수 없다”고 한다면 가장 취약한 고리의 자급률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산주의로는 식량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현실이다. 100% 자급률은 불가능하다. 설사 가능해도 경쟁력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동맹국과의 연대나 신뢰할 수 있는 식량 공급망 등 글로벌 안전판 관리 역시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전략적 불가결성이다. 한국으로부터 공급받지 않으면 대안이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상대국의 식량 무기화에 대응할 ‘억지력’이다. “식량안보를 지키려면 차세대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서 앞서가야 한다”는 점은 그런 맥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주창한 ‘유치산업 보호론’은 분명한 전제를 갖고 있었다. 상대국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분발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잠재적 비교우위’가 그것이다. 기후변화로 농업의 글로벌 지형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혁신으로 첨단 농업의 판도 또한 변하고 있다. 한국 농업이 ‘잠재적 비교우위’를 치고 들어갈 절호의 기회다.
농협중앙회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국민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가치로 ‘식량안보 강화’를 꼽았다. 정부가 답할 차례다. 식량안보를 위한 농업의 지경학은 국가의 임무다.
안현실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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