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
인류 역사에서 총이 등장하기 전 가장 많이 쓰였던 병기는 칼이나 창이 아닌 활이었다. 사냥에도 필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칼은 악당들도 많이 쓰지만 활은 주로 정의의 히어로가 쓰고 낭만적인 느낌까지 있다. 헝거 게임의 캣니스, 어벤저스의 호크아이, 반지의 제왕 레골라스, 그리고 람보다. DC코믹스의 그린 애로우가 종결자이고 국내에도 '최종병기 활'이 있다. 힘과 영웅의 대명사 헤라클레스가 시위를 당기는 유명한 조각상이 활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대표팀은 올림픽 10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40년 연속 세계 정상'이라는 기록은 다른 어느 종목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드림팀' 미국 남자 농구가 미래에 그렇게 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지나 봐야 안다. 그리고 한국 양궁팀은 파리에서 금메달 5개를 모두 석권하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김우진 선수는 통산 금메달 5개로 각 4개를 보유한 사격의 진종오, 양궁의 김수녕 선수를 제치고 한국 올림픽 최다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활 하면 영국이 배출한 전설의 의적 로빈 후드다. 민간에서 설화로 전해 내려오다가 월터 스콧이 '아이반호'(1819)에서 소개한 이래 세계사적 인물이 되었다. 활이라는 무기는 드라마틱한 특징이 있고 중세까지만 전쟁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로빈 후드 캐릭터와 합쳐지면 박진감 있는 고전적 서사가 된다. 자기가 바로 전에 쏘아서 나무에 박혀있는 화살을 그대로 맞혀 둘로 쪼개버리는 영화 장면이 로빈 후드(케빈 코스트너)의 공력을 상징한다. 사실 이 설정은 '아이반호'에 이미 나온다.
로빈 후드 영화가 현실에 재현된 일이 있다. 도쿄올림픽 때 한국팀 안산 선수는 정말로 화살로 화살을 맞힌다. 그 화살 두 개는 IOC 박물관에 '로빈후드의 화살'이라고 해서 보존되어 있다. 크로아티아 양궁월드컵에서 정다소미 선수도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도킹'이라고 부르는데 손상된 화살과 같은 점수를 준다. 경기 때 선수가 과녁 정중앙에 설치된 카메라를 명중시켜서 카메라가 파손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애틀랜타, 시드니,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에서 발생했던 '사고'다. 카메라가 고가여서 이제는 과녁에 설치하지 않는다.
한국 양궁은 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한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협회 회장에 선출되었던 1985년부터다. 정의선 회장이 2005년에 이어받았다. 로봇산업의 강자이기도 한 현대차는 이번 파리올림픽 대비에 슈팅 로봇이라는 이름의 양궁 로봇을 훈련장에 투입 해주었다. 국제 경기 대비 훈련은 나보다 강한 해외의 상대와 하는 것이 이상적인데 양궁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전국체전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오기도 하는 종목이 양궁이다. 이번에 대표선수들은 진천선수촌에서 로봇과 대결하면서 훈련했다.
슈팅 로봇은 바람 센서를 장착한 가공의 선수다. 인간 선수들은 경험과 감각으로 바람을 계산에 넣지만 로봇은 컴퓨터가 궤적을 예상하고 경기한다. 로봇은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맞히는 빌헬름 텔 보다 더한 극강의 멘탈이다. 감정 자체가 없다. 양궁에서 항상 골칫거리인 상대국 응원단의 소음과 야유가 먹히지 않는다. 폭우에도 끄떡없다. 우리 선수들이 로봇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계와 겨루어서 슛오프까지 간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양궁에서는 세계 챔피언이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국내 선발전을 걱정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 간 경쟁이 치열하고 예체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학연, 지연의 연고주의나 'OO 카르텔' 같은 파벌 없이 일백 프로 실력으로만 겨루는 전통이 단단히 확립되어 있다. 후원사도 일체의 간섭 없이 지원만 한다. 중3 학생 선수가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기도 한다. 김수녕 선수가 88서울올림픽 2관왕이 되었을 때 고2였다.
한국 양궁사의 전설 서거원 감독이 2008년에 펴낸 책 '따뜻한 독종'에서 기업경영이 양궁에서 배워야 한다고 설파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대한양궁협회의 가장 큰 원칙이 바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이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우리 기업들은 그 조언을 실천했고 다시 선수 선발-관리와 경기 운영에 기업경영의 효율적이고 냉정한 규칙이 적용되어서 한국 양궁이 지속 가능하다. 국내 모든 스포츠 종목이 양궁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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