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순간마다 10점 ‘승부사’… 임시현 “더 악착같이 쐈다”

파리=이헌재 기자 2024. 8. 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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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임시현(21)은 시상대 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챔피언 세리머니를 했다.

작년부터 한국 여자 양궁의 에이스로 떠오른 임시현에게 이번 파리 올림픽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의 연속이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서는 지난달 25일 여자 랭킹 라운드에서 694점으로 세계 기록을 세우며 전체 선수 64명 중 1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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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이어 2번째
“준비한게 억울해서라도 더 집중”
결승 함께 오른 19세 남수현 은메달
올림픽 조직위 SNS에 ‘임시현 동상’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이 끝난 뒤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린 임시현 동상 이미지. 조직위는 한국어로 ‘축하해요’라고 쓴 글도 함께 남겼다. 사진 출처 파리 올림픽 조직위 인스타그램

파리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임시현(21)은 시상대 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챔피언 세리머니를 했다. 왼손 엄지와 검지를 말아서 잇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세워 ‘OK’ 사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왼쪽 눈에 살짝 갖다 대는 깜찍한 세리머니였다.

현장에서 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은 3관왕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라고 생각했다. 곧게 편 손가락 세 개가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난 임시현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했다. 그런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까지 연달아 3관왕을 차지할 가능성은 누가 봐도 그리 높지 않았다”며 “그래서 ‘바늘구멍’을 통과했다는 의미를 담아 준비한 나만의 세리머니였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작년부터 한국 여자 양궁의 에이스로 떠오른 임시현에게 이번 파리 올림픽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의 연속이었다. 먼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힘든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다. 3차례의 선발전과 2차례의 평가전 등 5번의 대회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임시현은 체육고등학교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전국 대회 메달이 하나도 없어 현장 실기시험을 따로 봐야 했던 선수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서는 지난달 25일 여자 랭킹 라운드에서 694점으로 세계 기록을 세우며 전체 선수 64명 중 1위를 했다. 나흘 뒤인 지난달 29일 전훈영(30) 남수현(19)과 함께 팀을 이뤄 출전한 여자 단체전에선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했다. 남자 대표팀 김우진(32)과 짝을 이룬 혼성전에서도 2일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마침내 3일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개인전 결승에서 팀 후배 남수현을 세트 점수 7-3(29-29, 29-26, 30-27, 29-30, 28-26)으로 꺾고 대회 3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임시현은 이번 대회 단체전과 혼성전, 개인전에서 위기의 순간이나 승부처마다 10점을 쏘는 집중력을 보여줬다. 그는 ‘억울함’이 비결이라고 했다. 임시현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빨리 끝나버리면 너무 아쉽지 않나. 그래서 더 악착같이 쏘게 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준비한 게 있으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 있게 시위를 당기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체육대에서 임시현을 지도하고 있는 김동국 교수는 임시현을 두고 ‘평온한 10점의 승부사’라고 표현했다. 긴장감이 최고에 이를 때조차 여유를 잃지 않고 10점을 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이다

임시현뿐만 아니라 한국 양궁 대표팀 선수들은 하루에 화살 400∼500발은 기본으로 쏜다. 훈련 내용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하루 600발까지도 쏜다. 양창훈 여자 양궁 대표팀 감독은 “훈련이 끝난 뒤 저녁 시간에 나가 보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선수들이 활을 쏘고 있을 때가 적지 않다”며 “선수들한테 ‘좀 쉬라’고 한 적은 있어도 ‘더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임시현은 혼성전에 함께 나섰던 김우진을 ‘롤 모델’로 꼽으며 “우진 오빠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진 오빠의 장점은 꾸준함이라 생각한다. 그(세계 정상) 위치에서 꾸준할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며 “계속 옆에서 보며 많이 배우겠다”고 했다.

임시현이 파리 올림픽 경기 일정을 모두 끝낸 뒤 편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 첫말은 “이제 잠을 좀 제대로 자고 싶다. 정말 푹 쉬고 싶다”였다.

파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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