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 뇌 만들어 정확하게 진단

유지한 기자 2024. 8. 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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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엘비스’ 창업한 이진형 스탠퍼드大 교수
엘비스 창업자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가 한국 사무실에서 환자의 뇌를 가상으로 만들어 분석하는 설루션 ‘뉴로매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뇌 안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는지 파악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이에 맞는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은 아직 완전한 치료법이 없다. 증상이 나타나야 알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어렵다. 스타트업 ‘엘비스(LVIS)’는 디지털로 가상의 뇌를 만들어 뇌 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는 설루션을 개발했다. 이 회사 창업자는 한인 여성 최초로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공대 종신교수가 된 이진형 교수다. 이 교수는 최근 본지와 만나 “뇌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를 하는 것과 같다”며 “치료의 가장 첫발은 정확한 진단이고, ‘디지털 트윈’ 기술로 뇌 질환의 치료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와 똑같은 가상의 모델을 쌍둥이처럼 구현한 기술로, 실제와 가상 모델이 연동돼 다양한 모의시험을 할 수 있다.

◇뇌를 전기회로처럼 분석

이진형 교수는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학자다. 전공도 전기공학이다. 그가 창업한 회사 ‘엘비스’의 핵심 분야인 뇌 과학과는 관련이 적다. 하지만 박사 학위가 끝날 무렵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 진로 변경의 계기가 됐다. 이 교수는 “뇌 질환 치료 방법에 의문이 들어 직접 문제를 풀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다른 미국 명문대 교수로 임용된 상황에서 뇌 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신경망으로 연결된 뇌를 전기 회로도처럼 분석하는 연구로 인정받아 스탠퍼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새로운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이 교수는 “뇌 연구를 본격 궤도에 올리기까지 1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기존에 없던 연구여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교수는 “이 기술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며 “논문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2013년 실리콘밸리에서 엘비스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도 ‘뇌 회로를 생생히 시각화한다(Live visualization of brain circuits)’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교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실험실 연구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며 “기술을 개발하고 승인을 얻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 환자 데이터를 적용해 뇌 질환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까지 어렵고 긴 과정이었다.

◇”맞춤형 뇌진단 시대 올 것”

엘비스가 오는 9월 정식 출시하는 뇌 질환 진단 설루션 ‘뉴로매치’는 오랜 연구와 개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뇌파나 뇌 사진 같은 환자의 정보를 넣으면, 뇌 회로로 가상 뇌가 구현되고 인공지능(AI)이 이상 부위를 찾아낸다. 이 교수는 “파킨슨과 알츠하이머 같은 현재의 뇌 질환은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 섰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엔진 오일 부족’이라고 고장 원인을 가려내는 것처럼, 뇌도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알아야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뉴로매치에 대해 “의사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뇌에 어떤 부분이 이상이 있는지 표시해 준다”며 “사람이 분석하려면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뉴로매치는 바로 해낸다”고 했다.

진단은 우선 뇌전증(간질)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 6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과 대구 지역 6개 병원에 뉴로매치가 도입됐다. 올가을 미국에 출시되고 유럽·일본·중동·남미·싱가포르에서도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앞으로는 치매, 수면 장애, 파킨슨병, 자폐 등 진단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교수는 “엘비스의 기술로 의사는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고, 국가 의료 시스템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며 “미래에는 가정에서 자기 뇌 상태를 체크하고 이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가 맞춤형 정밀 진단을 받는 시스템이 갖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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