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원하는 대로… 매일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서울 서대문구 붉은 벽돌 구옥 건물 ‘연남장’에선 세상에 없던 관객 참여형 공연이 진행 중이다. 배우와 창작진은 관객이 즉석에서 시키는 대로 그날그날 노래와 이야기를 새로 만든다. 관객은 맥주 마시고 사진 찍고 마음껏 소리 내 웃으며 공연을 즐긴다. 제목부터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2017년 대학로 초연 이후 5번째 시즌인데, 100석 채 안 되는 연남장은 매회 관객들로 북적인다.
폭우와 쨍한 햇빛이 오락가락하던 날, 연출가가 관객들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딥니까?”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폭우!” “도쿄!” 하고 답했다. 연출가가 바로 받았다. “자, 도쿄에 내리는 폭우, 첫 곡 시작합니다. 근데 주인공 이름?” “김철수!” 여배우가 주인공이지만 이름은 ‘김철수’다. 관객이 원하니까.
관객 뜻에 따라 장르, 제목, 배경, 캐릭터, 상황이 결정되고, 다른 장면과 노래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무대 위 배우 5명, 연출가와 뮤지션들이 관객과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 나가는 셈이다.
배우들 순발력과 노래 실력이 국가대표급이 아니면 못 할 작품. ‘아나따와 와따시와 아리가또 곰방와~.’ 즉석에서 만든 ‘아무말 대잔치’ 가사에 웃다 보니, 노래는 이야기 속으로 그럴듯하게 녹아든다. ‘도쿄에서 내 사랑을 만나겠지/ 이런 엔저 시대 이것저것 다 살 거야/ 내 사랑도 찾고 말 거야~.’ 재연도 불가능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뮤지컬이 90여 분간 이어진다.
즉흥 뮤지컬의 총지휘자는 김태형(46) 연출가. 과학고·카이스트·한예종 졸업 이력의 각광 받는 연출가인 그는 최근에도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인축제 대상 수상 연극 ‘빵야’, 한국뮤지컬어워즈 5관왕 대극장 뮤지컬 ‘멤피스’ 등을 연출했다.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더 흥미진진하다. 이날도 ‘오빠처럼 생각하라’며 여주인공에게 추근대는 직장 상사를 향해 “우우~” 야유를 보내던 관객들은 주인공이 “그럼 오빠니까 말 놓을게” 하고 받아치자 폭소를 터뜨리며 환호했다. ‘그런 식이면 니 인생은 너무 무거워/ 참지 마, 괜찮아, 참을 수 없을 땐 참지 마….’ 손해 보며 착하게만 살아온 여주인공 김철수는 도쿄에서 갖은 사건을 겪으며 새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배우와 관객 사이는 팔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다. 배우들은 관객과 눈 맞추고 말 걸며, ‘여기가 감자튀김 맛집이야’ 농담을 하면서 관객 접시에서 슬쩍 안주를 집어 먹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공연 뒤 김태형 연출은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한 즉흥 뮤지컬을 만들까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해왔다. 오늘은 10점 만점에 8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가끔 이야기가 진짜 잘 안 풀려서 ‘환불해 드려야 하나’ 싶은 날도 있거든요. 그런데도 즐기며 응원해주시는 관객 덕에 오히려 저희가 용기와 힘을 얻어요.”
연남장에선 뮤지컬 배우 이영미가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는 ‘송 포 미(Song For Mee)’, 무명 뮤지컬 배우들의 애환을 그린 포복절도 뮤지컬 ‘아이 위시(I Wish)’ 등 공연 여러 편이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8월 31일까지, 전석 4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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