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주한의 딸… ‘역경도 生의 일부’라 가르친 아버지가 내 삶의 원천

김윤덕 기자 2024. 8. 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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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코로나 백신으로 노벨 생리의학상 커털린 커리코 헝가리 세게드大 교수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 교수는 “실험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학자는 ‘형사 콜롬보’처럼 흥미진진한 직업”이라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나는 상(賞)을 꿈꾸지 않는다. 실험하고 연구하는 것만이 나의 영원한 꿈이다.”

코로나에서 인류를 구한 이 여성 과학자는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한 가지만 더!(One more thing!)”를 외친다고 했다. 한 번 더 의심하고, 한 번 더 질문하고, 한 번 더 실험하고…. 과학계의 외면과 조롱에도 40년을 몰두해온 mRNA가 코로나 팬데믹을 돌파한 무기가 된 것도 이 집요한 주문에서 시작됐다.

회고록 ‘돌파의 시간’(까치글방) 한국어판을 출간한 커털린 커리코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나는 논리적이고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은유나 뜬구름 잡는 묘사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의 답변은 짧지만 명쾌했다.

◇나는 賞을 갈망한 적이 없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기 전 당신은 이름 없는 연구자였다. 노벨상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노벨상은 작년 12월에 받았지만 백신을 개발한 2021년 이후 지구를 여러 차례 돌면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 이전에 나는 어떤 상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유명해지거나 인정받기를 갈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코로나 백신을 발명했다는 건 온전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더라.

“사람들은 날 ‘영웅’이라 부르지만, 진정한 영웅은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에서 싸운 의료 종사자들과 기술자들, 청소부들이다. 그리고 우리 이전에 세포와 핵을 들여다본 과학자들, DNA와 RNA, mRNA를 발견한 사람들, 이 mRNA를 세포 안에 넣을 수 있게 해준 연구자들이 없었다면 백신은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백신의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한 수천 명의 과학자들, 백신 생산을 확대한 수천 명의 전문가들, 그리고 임상시험에 자원한 사람들의 역할은 말할 나위 없다.”

-모더나, 화이자 등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회사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당신은 대학으로 돌아갔다.

“모교인 헝가리 세게드 대학의 교수직을 수락했다. 나는 여전히 미국에 살고 있지만 (강의와 연구를 위해) 1년에 몇 번씩 헝가리로 간다. 현재 나는 노보노디스크 재단이 지원하는 국제 mRNA 콘퍼런스를 조직하고 있다.”

바이러스 항체 등 원하는 단백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있게 한 커리코의 mRNA 기술은 의학·바이오 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현재 mRNA 독감 백신, 암과 에이즈 백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 당신은 펜실베이니아대(유펜)에서 괄시받는 연구자였다. 연구비를 따오라는 압박에 시달렸고, 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됐으며, 실험실이 강제 폐쇄되기도 했다.

“유펜의 내 상관이었던 이들도 나의 노벨상 수상을 기뻐하고 축하해줬다. 나를 강제로 내보낸 보스를 나는 비난한 적이 없다. 그는 (내 실험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외과 의사였고, 나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NIH(미 국립보건원) 전문가들에게 거절당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커리코 박사는 회고록에 한스 셀리에의 책 ‘생명의 스트레스’를 인용하며,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남을 비난할 시간에 차라리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창의력을 발휘하면 불운에 대처할 길이 열린다”고 썼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커털린 커리코가 실험실에서 작업하는 모습. /노벨상 아웃리치

◇ 모두가 포기하라고 했던 mRNA

커리코가 mRNA(메신저 리보핵산)에 빠진 건 대학 재학 시절이다. DNA에서 유전정보를 복사해 우리 세포에 특정한 단백질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mRNA의 정보 전달 체계에 착안한 그는 언젠가는 mRNA를 이용해 우리 몸이 질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세포에서 직접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동료 과학자들은 mRNA 연구를 극구 말렸다더라.

“RNA는 실험실에서 다루기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 재료다. 모든 분자생물학 실험실은 박테리아(세균)에서 분리된 플라스미드를 얻기 위해 Rnase(리보뉴클레아제)를 사용하는데, 이 효소는 아주 소량만 있어도 RNA 샘플을 파괴한다. 따라서 실험실을 멸균하고 소독해 청정 구역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동료들은 그런 번거로움을 무릅쓸 만큼 RNA가 가치 있는 물질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런 말들을 믿지 않았다.”

-40년 연구에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을까.

“내가 직면한 위기는 언제나 연구 자금이 부족해서였지, 실패한 실험들과는 관련이 없었다. mRNA와 그 전달 체계의 최적화로 단백질 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에 나는 mRNA가 바이러스에 대적할 엄청난 치료제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과학 자체보다 연구를 포장하는 능력, 연구비를 끌어오는 능력, 정치 사다리에 오르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과학계를 비판했다.

“과학자가 보조금을 받기 위한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또한 연구의 결과물은 (특정 저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온라인에서 즉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자연의 메커니즘, 그 비밀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연구를 밀고 나간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시간에 출근해 온종일 실험하는 일이 즐거웠다. 남들 눈엔 지루한 풍경이겠지만, 내 머릿속엔 원대한 아이디어가 흘러넘치고 소용돌이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mRNA의 성능은 계속해서 향상됐고, 그로 인한 연구의 진전으로 나는 프로젝트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과학자는 ‘형사 콜롬보’처럼 흥미진진한 직업이라고 했더라.

“자연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수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형사가 범인을 쫓듯 과학자도 단서를 찾아야 한다. 실험을 통해 단서를 찾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면 질병을 치료하는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한 가지만 더!’는 당신이 좋아한 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대사다. 노벨상을 수상한 뒤에도 ‘한 번 더’를 외치나?

“물론이다. 실험은 정확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의심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한 번 더 질문하고, 한 번 더 실험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한 가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가리키는 곳에 진실이 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2021년 모국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커털린 커리코 교수. 그녀의 뒤로 '미래는 헝가리인이 쓴다'는 문구가 적힌 벽화가 보인다. /까치글방 제공

◇ 단 하나의 의심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학교 복도의 복사기 앞에서 전염병 학자인 드루 와이스먼을 우연히 만난 것이 코로나 백신 개발의 결정적 순간이 됐다.

“면역에 대해 알지 못하는 RNA 과학자와 RNA 연구 경험이 없는 면역학자가 만난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8년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mRNA 기술로 우리 몸이 염증을 일으키지 않고 항원을 생산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커리코 박사는 노벨재단과 인터뷰에서 “복사기를 먼저 차지하려고 나와 신경전을 펼쳐야 했던 드루는 말이 없고 스트레이트한 사람이고 나는 수다스럽고 지그재그한 스타일이었지만 실험실에선 둘 다 진지하고 엄격했다”며 웃었다.

-그런데 네이처지는 당신과 와이스먼의 혁신적인 논문을 게재해주지 않았다. 면역 학술지 ‘이뮤니티’에 실렸지만 과학계는 시큰둥했다. 결국 둘의 연구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아니었더라도 mRNA는 결국 임상에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가 그 과정을 앞당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내 이름과 업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도 좋으니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루머와 가짜뉴스도 많았다. 한국에도 여전히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신은 다른 어떤 치료제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한다. mRNA 백신은 당신의 몸에 침입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인식하고 제거하도록 돕는 단 하나의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따라서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보다 백신을 접종받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은 명백하다. 백신이 유전자를 변형하고, 생리 주기를 바꾸며,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생리 주기를 바꿀 수 있지만 위험하지 않고, 머지않아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커털린 커리코가 24세였던 1979년 헝가리 키슈이살라시 집 마당에서 부모와 함께 찍은 사진. 푸주한이었던 아버지는 딸이 생화학자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까치글방 제공

◇ 푸줏간 집 딸로 태어나

-공산주의 체제의 헝가리에서 푸주한의 딸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돼지 잡는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에게 나는 ‘힘든 일’ 또한 삶의 일부라는 걸 배우며 자랐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것도. 아버지는 비록 정치체제에 떠밀려 다니며 고통받았지만,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 맞섰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었을 때도)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할 방법을 찾는 데만 집중했다.”

-가난한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적은 없는지.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정육점에서 해고돼 술집에서 일할 때 나와 언니는 아버지를 도와 테이블을 닦고 담배꽁초를 버렸다.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늘 다정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런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했다.”

-남편 벨러는 딸의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아 했더라. 당신처럼 강한 여성과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벨러 또한 강한 사람이다. 자동차 엔진부터 재봉틀까지 못 고치는 게 없는 기술자다. 그는 우리 식구가 사용하는 테이블, 책상, 캐비닛, 침대를 직접 만들고, 여러 장비를 분해하는 걸 즐긴다. 벨러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자동차를 고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내가 유펜에서 쫓겨났을 때도 변함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준 사람이다.”

-코로나 백신 개발로 유명해진 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던데.

“그날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느낌이 들었다. 동갑이었고, 둘 다 ‘철의 장막’ 뒤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해 인생에 공통점이 많았다. 마침 둘 다 회고록을 쓰고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의 책은 올해 말 ‘자유(Freedom)’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딸 수전은 올림픽 조정 종목에서 두번이나 금메달을 딴 선수더라.

“엄마로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기술을 배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이 지루해지고 쉽게 좌절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편안한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물론 딸은 이런 종류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말한 것을 천천히 깨닫고 자신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딸에게 조정을 해보라거나 다른 스포츠를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수전 스스로 선택했고, 경쟁하는 걸 즐겼다.”

-다시 태어나도 과학자가 될까?

“과학자가 아닌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고 실험하고 발견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다.”

-’돌파(Breaking Through)’가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가장 많이 배운다. 다만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남과의 비교 대신 자신이 할 수 있고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기후 위기, 가짜 뉴스로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나는 과학의 진보와 과학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중을 교육할 수 있다. 과학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신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시간을 할애한 이유다.”

2012년 런던올림픽 조정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수전과 커털린 커리코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 다섯 살 연하인 남편 벨러는 실험에 몰두하는 아내를 위해 딸의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까치글방 제공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커털린 커리코 교수의 회고록 '돌파의 시간' 한국판 /까치글방 제공

☞커털린 커리코

1955년 헝가리 솔노크 출생. 세게드 대학에서 생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헝가리 생물학연구센터(BRC)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5년 미국으로 이주, 템플대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대 부교수로 재직했다. 전염병 학자인 드루 와이스먼 교수와 mRNA 면역반응 회피 원리를 개발해 모더나·화이자 등과 코로나 백신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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