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하니예 피살… 이스라엘은 전쟁 끝낼 생각이 없다
이스라엘은 거침없었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폭살했다. 가자에서 교전 중인 군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죽였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휴전 협상을 지휘하고 있던 하니예를 죽인 것은 분명한 신호다.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휴전은 더욱 어려워졌고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본질은 네타냐후의 생존 게임이다. 전쟁에 올라타 위기를 넘기고 권력을 지키려는 의지다.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최악 과실은 적의 기습을 막지 못한 것이다. 적에 둘러싸여 네 차례 전쟁을 겪고 수시로 테러를 당해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욤키푸르 전쟁, 즉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에 기습당한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대법원장이 주재한 전후 조사위원회는 엄중하게 정부 책임을 물었다. 19일 만에 적을 격퇴했음에도 총참모장을 파면했다. 모셰 다얀 국방장관을 질책했다. 당시 강력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골다 메이어 총리도 결국 사임했다. 아무리 존경받는 국민 영웅이라도 기습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게 이스라엘의 전통이었다.
작년 하마스의 만행 직전, 연립정부 극우화를 합법화하기 위한 네타냐후의 사법 개편 시도로 이스라엘은 시끄러웠다. 정치적 혼란으로 방어 태세는 느슨해졌다. 하마스가 기습한 10월 7일은 욤키푸르 50주년 다음 날인 안식일이었다. 하마스는 일부러 이날을 고른 듯했다. 기습 트라우마는 컸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전에 나섰고 10개월째 진행 중이다. 전쟁 중에는 리더를 바꾸지 않기에 국민들은 정부와 함께 싸우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총리와 내각의 책임을 물을 태세다.
하마스의 기습은 단순히 국가 간 전쟁이 아니었다. 무장 테러 집단이 한나절 동안 이스라엘 마을을 유린하며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질을 납치한 테러 사건이었다. 하마스에 대한 복수와는 별개로 네타냐후는 욤키푸르 때보다 무거운 피습 책임을 회피할 길이 없다. 단순히 정치적 실각만이 아니다. 총리에 복귀하며 중단된 기존 부패 피소건이 되살아나며 형사처벌 위기도 맞게 된다. 책임론 부상과 함께 자칫 연정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네타냐후는 이른바 카하니스트(Kahanist)들과 손을 잡았다. 팔레스타인 축출과 선민사상을 강조하며 배타성을 추구하는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이다. 호전적이고 폭력적이다. 미국 등 서방에서는 이들을 테러리스트와 동급으로 본다. 이들과 손잡은 네타냐후가 전방위적 무력 충돌을 펼치게 된 배경이다. 가자지구 작전을 넘어서서 최근 북쪽으로는 레바논 헤즈볼라, 남쪽으로는 예멘 후티 반군과 벌이는 무력 충돌, 그리고 서안지구 공격까지도 불사하는 이유다. 하니예 제거도 같은 맥락이다.
네타냐후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이스라엘 정치인 중 정무 감각이 가장 뛰어나면서도 노회한 인물로 꼽힌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공세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벌이는 무리수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주적 이란을 억제하는 전략적 포석도 담겨 있다.
첫째, 이란 내부 정치 교란을 노렸다. 개혁파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등장으로 온건파가 조금씩 입지를 구축하는 국면에서 강경파와 균열을 유도하는 수로 읽힌다. 자국 영토에서 그것도 대통령 취임 축하 잔치 분위기에서 벌어진 도발이다. 이란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수도 한복판에서 축하 사절이 살해된 사실 자체가 수치다. 혁명수비대와 정보기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대응 수위를 놓고 이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록 복수와 응징을 다짐하고 있다지만 지난 4월 주(駐)시리아 이란 대사관 영사부 피습 때와는 결이 다르다. 당시에는 영토에 준하는 재외공관이 공격받았고 이로 인해 혁명수비대 간부 등 자국민들이 사망한 터다. 묘하게도 이번 공격으로는 이란 국민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하니예와 수행원만 정밀하게 타격했다. 선뜻 확전에 나서기 어렵다. 이란 내부 여론은 강경 대응론과 신중론으로 갈리고 있다. 자칫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둘째, 미국과 핵 협상 재개에 나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융합, 세계와 소통, 미국과 대화 등 3대 대외 정책 원칙을 내세웠다. 대화를 통한 제재 완화를 추구하겠노라 말했다. 미국에서는 네타냐후에게 비판적인 해리스 부통령이 급부상하고 있다. 만일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란과 핵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4년 전 바이든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의 호전적 분위기를 유도하고 위기감을 높여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의도는 이란과 적대적인 중동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역량 과시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작 능력을 확인했다. 혁명수비대가 관리하는 건물에서 요인을 정확히 암살한 사실에 놀랐다. 이란의 위협을 우려하는 걸프 왕실은 겉으로는 팔레스타인 대의를 내세우며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그러나 내심 자신들의 왕정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란의 혁명 이념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연대가 긴요함을 알고 있다. 이번에 다시 한번 그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네타냐후의 공세적 포석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뜻대로 될 수 있다. 특히 테헤란이 강경하게 반응하면 네타냐후의 셈법대로 된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미국도 좋든 싫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 안보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네타냐후의 행보는 이스라엘이 그동안 지켜왔던 법치주의와 세속주의에서 멀어져 있다. 전쟁 중임에도 징집을 거부하는 초정통파 유대교인들, 강성의 점령 지구 정착민들,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 같은 극우파 카하니스트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이 중세적 종교 근본주의에 포획된다면 그 미래를 어찌 낙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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