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양복이 젖을 정도로"...'성추행 누명' 숨진 교사, 7년 뒤[그해 오늘]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저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가는 바람에 우리 가정도 성희롱범의 가정이 되잖아요. 우리 딸애가 성희롱 범인의 자식이 돼버렸잖아요”
고(故) 송경진 교사(사망 당시 54) 씨의 아내 강하정 씨가 한 말이다.
그해 4월 송 교사는 성추행 혐의로 신고를 당했다. 당시 일부 학부모가 송 교사에 대해 ‘수업 시간에 여학생의 허벅지를 만졌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송 교사가 다리 떠는 학생의 무릎을 친 것인데, 자율학습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송 교사로부터 꾸중을 들은 한 학생이 1년 전 있었던 친구 일을 성추행으로 확대하면서 벌어졌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학생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추행 의도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 모두 송 교사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자 내사 종결했다.
그런데 전북교육청 산하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가 재조사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선생님은 죄가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전북교육청에 제출했고, 성추행이라던 학생도 진술 내용이 허위였다는 문자 메시지를 송 교사에게 보냈다.
“저희 모두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체육 선생님이 교무실로 2학년 여학생들 데리고 가서 모두 적으라 하셔서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도, 다리 떨면 복 떨어진다고 하신 것도 모두 만졌다고 적었어요. (그렇게) 적으면 자습시간에 ㅇㅇㅇ가 잘못해서 화나신 거 모두 풀어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를 위해 항상 신경 써주시고 잘 해주시는 선생님이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빨리 학교에 돌아오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송 교사는 이 문자를 받고 아내 강 씨에게 “드디어 오해가 다 풀린 것 같다. 이제 학교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뛸 듯이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학생인권센터는 탄원서와 문자를 확인하고도 ‘송 교사가 학생들의 인격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북교육청에 ‘신분상 처분’을 하라고 권고했다. 신분상 처분은 사실상 징계 절차에 착수한다는 것을 뜻했다.
격리 조치로 넉 달여간 학교에 출근도 못한 송 교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 교사의 아내 강 씨는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학생인권센터 측이 송 교사에게) 학생들이 무고로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며 “에어컨 빵빵 틀어서 썰렁했던 그 밀실에서 양복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낯빛이 백지장이 되어 나오게 만들었다”면서 강압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후 유족은 송 교사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고, 법원은 그 억울함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2020년 6월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송 교사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순직 유족 급여를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사망은 죄책감이나 징계의 두려움 등 비위 행위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는 수업 지도를 위해 한 행동이 성희롱 등 인권침해 행위로 평가되면서 30년간 쌓은 교육자로서 자긍심이 부정되고 더는 소명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란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끝날 줄 알았던 논란은 판결 한 달 뒤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취임 10주년 기자회견 발언으로 다시 불이 붙었다.
김 교육감은 송 교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한 판결에 대해 입장을 묻자 “교육청 조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전북 교육단체들은 잇달아 성명서를 내며 비판했고, 송 교사의 아내 강 씨는 김 교육감 등 전북교육청 관계자 등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2021년 4월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민사부(박근정 부장판사)는 “학생인권센터가 고인을 조사한 과정, 절차,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을 정도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수사 기관의 내사가 종결됐다고 하더라도 교육 당국의 인권 침해 조사,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절차 또한 불필요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전북교육청은 1월 송 교사 유족 뜻에 따라 정부 포상과 순직 특별 승진을 신청했고, 그다음 달 행정안전부는 송 교사에게 근정포장을 추서했다.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는 “고 송경진 교사가 근정포장 추서로 명예를 회복했지만, 가해자라 할 수 있는 관계자들은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재조사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순직 판결 이후에도 당시 김승환 교육감과 인권센터는 어떠한 사과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현 서거석 교육감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도 송 교사 사건의 사실 규명과 명예 회복, 응당한 조치를 약속했다”라고 강조했다.
‘송 교사 순직’은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권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학생이 성별·종교·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 보호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학생 인권이 과도하게 두드러지면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교권 침해 사건은 증가하고 있고 학교 밖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신종’ 피해에 교원들은 학생인권조례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반비례 관계는 아니지만 임계점을 넘은 교권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송 교사 아내 강 씨는 송 교사 사망 후 딸이 겪은 고통을 털어놓으며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뭐라고 했나요. 학생인권이 최고라면서요. 우리 애도 학생이었다고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학생 인권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생 인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이 중요한 거예요”라고 호소했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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