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면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8.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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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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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트남 호찌민의 한 가게 앞에 전자제품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뭔가하고 봤더니 스피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래방 반주 기기들이더라고요. 가게 앞에는 199만동(10만7500원) 짜리 스피커부터, 마이크 두 개와 스피커를 포함해 399만동에 판매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노래방들에 기기를 납품하는 가게가 아닙니다. 옆에는 작은 선풍기나 헤어드라이어 같은 걸 파는, 동네마다 있는 작은 전자제품 매장이지요.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전자제품 매장 앞에 늘어선 노래방 기기들. /호찌민=이미지 기자

그런데 왜 노래방 기기를 전면에 내세웠을까요? 집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 즐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에까지 노래방 기기를 설치해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는 이웃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집과 코너로 마주 보는 집의 베트남 아저씨는 케이팝을, 그중에서도 여자 아이돌 그룹 노래를 좋아하더라고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노래 실력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실력은 모자라지만 흥은 넘치는 그의 노래를 듣느라 괴로운 순간들이 이어지곤 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흥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소음’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입니다. 길거리에서도 마이크와 스피커를 끌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2시간이 넘는 길을 운전해 가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빵빵 빵빵’ 경적을 울리는 베트남에서 ‘소음’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넘치는 흥이 살인까지 이어져

소음 문제가 처음 대두된 것은 코로나 이후입니다. 2021년 우리나라의 설 명절 같은 베트남 명절인 ‘뗏’ 기간 동안 호찌민시에서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다”는 소음 신고가 접수됐다는 겁니다. 지난 2022년에는 북부 하이즈엉성에서 집에서 노래방 기기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두고 항의하던 이웃 간에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즐겁자고 부르는 노래가 비극의 씨앗이 된 셈입니다.

소음 신고가 계속되자 베트남 정부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공공 및 주거 지역에서 과도한 소음을 낼 경우 50만~100만동(2만7000~5만4000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던 관행이 쉽게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최근에도 밤늦게까지 흥을 뽐내는 이들이 넘쳐나지요. VN익스프레스는 “정부가 밤 10시 이후 소음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으나 아이들은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먼저 숙제를 시작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밤 10시 이후 소음 금지 규정의 실효성이 없단 거지요.

◇소음 민감도 높아지는 베트남

최근엔 베트남에선 자연스러운 소음이라 느껴지는 ‘경적소리’ 마저 공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24시간 빵빵대는 경적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리는 베트남에서 이를 소음이라고 생각하다니, 좀 놀랍기도 합니다.

사실 베트남 운전자들은 습관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베트남 언론 ‘뚜오이쩨’는 한 독자의 말을 인용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경적을 울리는 불행한 습관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이공 강 터널처럼 경적이 금지된 곳에서도 예외는 없죠. 터널 속에서는 빵빵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증폭됩니다.

왜 그럴까요? ‘빵빵’하고 경적을 울렸다가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을 수도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경적 소리가 하나의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운전자들은 경적 소리에 “당신 뒤에 차가 있다” “내가 지금 그 방향으로 움직일 거다” 같은 의미를 담습니다. 이 때문에 버스나 큰 차를 타고 지방에라도 가는 날이면 귀가 먹먹해질 각오를 해야 하죠. 좁은 길을 지나는 버스나 봉고차들이 주변 오토바이들에 “차가 있으니 피해!”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빵빵 빵빵~’하며 경적을 울리거든요. 이동시간이 2시간이 넘는다 해도, 그들은 경적 울리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4시간 넘게 경적 소리를 듣고 집에 가면,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환청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노래도, 경적도 ”불쾌한 습관” 비판도

우리나라에서는 ‘층간 소음’이 사회적 문제이지요. 층간 소음 갈등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2014년 2만641건에서 2023년 3만6435건으로 57% 증가했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강력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집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거나, 오토바이 경적 소리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베트남 사회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사적 공간을 존중하고, 피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죠.

베트남 독자들은 “아세안 국가 중 지역 사회를 파괴하는 (노래방) 기계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평화롭게 휴식하기 위해 노래방 기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가수가 옆집에 산다고 해도, 매일 밤 노래 연습을 하면 괴롭겠지요. 베트남 언론사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 뉴스레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노래 실력이 없습니다. 술 취했을 땐 말할 것도 없지요. 이건 단지 불쾌한 습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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