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폐차 후 대중교통, 광역시 노인도 어렵다
광주·울산·대전 등 분담률 10%대… 끝없는 신도시 확장이 낳은 결과
노인들 사는 원도심일수록 불편
중년에 접어드니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부모의 노화다. 지난달에 “더 이상 아버지가 운전하기 어려우니 차를 정리해야겠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을 때, 육체노동으로 단단했던 아버지의 몸이 이제 페달을 제때 힘껏 밟기 어려워질 정도로 근육이 사라지고 순발력도 떨어지게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저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자동차 없이 일상생활을 하셔야 하나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거주하는 담양 집을 정리하고 광주광역시로 돌아간다 해도 대중교통만 의존해 살 수 없는 여건이기 때문이었다.
버스나 지하철만으로 웬만한 이동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서울과 인근 수도권 시민의 특권 중 하나다. 주요 도시 시민들의 일일 통행량(도보 제외) 중 버스‧철도 같은 대중교통이 차지하는 비율(수송 분담률·국가교통통계 기준)은 2021년 광주는 18.2%에 불과하다. 울산(13.9%). 대전(17.5%), 대구(25.2%)는 물론이고 그나마 지하철 등이 활성화된 부산(31.2%)도 30% 선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53.0%인 서울과 현격한 격차가 있다. 부산을 제외하면 경기도 전체(25.4%)보다 대중교통 비율이 작다. 농어촌이나 중소 도시뿐만 아니라 광역시에서도 승용차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다.
10년 전인 2012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광주의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은 28.2%로 10%포인트 높았다. 부산, 울산도 비슷한 수준으로 대중교통 위축 현상이 발생했다. 광역시들이 몇 년 전부터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저렴한 정액 요금제를 내놓고, 도시 철도나 트램 등 장거리 대량 수송 능력이 뛰어난 새 교통망을 건설하고 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광역시까지 대중교통 사막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도시 구조에 있다. 수도권과 마찬가지로 광역시도 끊임없이 ‘○○ 지구’라는 명칭이 붙은 아파트가 빼곡한 신도시를 만들면서 확장을 거듭한 결과다. 대구는 2003년, 광주는 2014년 인구가 정점을 찍었지만 신도시는 늘어만 갔다. 인근 시군에서 유입되는 인구로 성장을 거듭할 때의 습속이 경제적, 정치적, 행정적 이해관계를 뒷배 삼아 강고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거주지와 일터는 넓게 흩어졌다. 광주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변두리 광천동이 도심 정중앙이 됐고, 영산강 건너 수완동이나 나주 바로 옆 갈대밭이었던 송암동은 젊은 중산층이 모여 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인구는 조금씩 주는데 도시 기능과 주거지가 흩어지다 보니 버스 노선은 늘지 않고, 노선 길이는 증가하고, 배차 간격은 듬성해졌다.
도시 내부도 노인이 사는 원도심과 젊은 중산층의 신도시로 확 갈리게 됐다. 부산의 경우 김해공항 바로 밑 명지1·2동이나 기장군 정관읍의 평균 연령은 35.8~39.5세다. 반면 남포동, 모라동 같은 낡은 거주지는 58세 전후다. 일자리, 쇼핑, 서비스가 신도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원도심의 도로와 보행 인프라는 신도시보다 열악하다. 오랫동안 살았던 두암동 집에서 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무등도서관 사거리나 인근 말바우시장은 광주에서 손꼽히는 보행 교통사고 다발 지역이다. 원도심을 걷다 보면 왜 한국의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10만명당 7.7명)은 OECD 평균(1.9명)의 4배인지 납득이 간다.
토요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옥색 소형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사고가 날 뻔한 모습을 봤다. 운전석에는 중절모를 쓴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들에게 무작정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라고 요구하는 게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까. 광역시조차 폐차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말이다. 도시 구조와 인프라를 바꾸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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