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56] 直言하다 손해만 본 집안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4. 8. 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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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바른 소리를 하면 대가가 크다. 벼슬도 못 올라가고 곤장 맞고 유배나 가고, 돈도 잃기 마련이다. 조선조에서 직언하다가 망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집안이 안동 검제의 의성 김씨 학봉 집안이다. 실제로 망하지는 않았지만 ‘입바른 소리 하다가 집안 망했다’는 평판이 있어 왔다.

학봉 김성일(1538~1593)이 36세 때 사간원의 정언으로 있으면서 경연에 참석하였다. 경연에서 임금인 선조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선조가 물었다. ‘나를 전대의 제왕과 비교해 볼 때 어느 군주와 비슷한가?’ 다른 사람은 요순과 같은 성군이십니다’라고 하였다. 학봉은 ‘요순도 될 수 있고 걸주도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걸주는 폭군의 대명사이다. 이 말을 들은 선조의 낯빛이 변하였고 다른 신하들은 벌벌 떨었다고 전해진다.

대북(大北) 정권인 광해군 때(1621년) 영남 유림이 대북 정권의 부패와 당시 권력의 실세였던 이이첨을 탄핵하는 ‘영남유림만인소’를 올렸다. 그 핵심은 권력의 핵심 이이첨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만인소의 제일 앞에 1번 타자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학봉의 맏손자 단곡 김시추(1580~1640)였다. 1번 타자를 소수(疏首)라고 한다. 소수는 여차하면 사약 받거나 유배당하거나 맞아 죽는다. 이이첨이 이를 반역으로 몰았다. 결과적으로 만인소 1년 6개월 뒤에 광해군 정권이 무너졌다.

지촌 김방걸(1623~1695)도 강속구만 던졌다. 그가 67세 때인 1689년 노론의 핵심인 송시열, 김수항에 대해서 ‘국왕을 핍박하고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렸다’고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송시열과 김수항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 김방걸은 전라도 동복으로 유배를 갔고, 유배지에서 73세로 죽었다. 제산 김성탁(1684~1747)도 고생 많이 하였다. 제산의 스승인 갈암 이현일이 집권당인 노론에게 찍혔다. 그 찍힌 죄목은 ‘명의죄인(名義罪人)’이었다. 의역을 하자면 ‘너는 영원히 죄인이다’라는 뜻이었다. 김성탁은 스승인 갈암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대가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제주로 귀양을 갔다가 다시 강진을 거쳐 광양에서 유배 11년 만에 64세로 죽었다. 김방걸과 김성탁은 같은 의성 김씨 내앞파이다.

안동 좌수를 지냈던 김몽렴(1675~1751). 노론의 상징인 청음 김상헌의 서원을 안동에 세우려고 하니까 공사가 거의 완공되어 가던 청음서원을 밧줄에 걸어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다. 주동자였던 김몽렴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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