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사도광산, 일본이 의심받는 이유

강구열 2024. 8. 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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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역사 명시’ 약속 무색하게
강제성 명시 안 해 진정성 의문
일 역사 직시하려는 자세 없어
과거사 왜곡 형태 되풀이 우려

지난달 27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기라리우무사도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사도광산이 이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걸 자축하는 자리였다. 사도광산에서 나온 금을 상징하는 듯한 금색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기뻐했다. 등재를 추진해 온 일본 각지 관계자들을 화상으로 연결해 서로를 격려하는가 하면 축하공연도 펼쳤다. “서구의 기계화에 견줄 수 있는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였던 사도광산”(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대한 자부심과 세계유산 등재로 관광객이 늘어 쇠락해 가는 사도섬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란 기대가 넘쳐났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 명시를 둘러싼 논란은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 보였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사도광산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설이다. 사도광산 채굴 단계에서 나오는 금속과 폐기물 등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던 부유선광장에 인접해 있다. 등재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전시 내용이 공개됐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강제노역과 관련된 것은 2층 ‘조선반도(‘한반도’의 일본식 표기)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 전시실에 있다. ‘출신지’, ‘생활’, ‘노동환경’ 3개 분야로 테마를 나누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을 끈 건 ‘가혹한 노동환경’이란 문구가 포함된 제목의 전시물이었다.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하면서 해당 작업에 참여한 조선인, 일본인 숫자를 표로 정리했다. 위험한 작업 중 하나로 꼽은 암반 뚫기의 경우 조선인이 4배 이상 많았다.

아이카와 박물관의 전시를 보며 떠오른 건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다. 2015년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산업유산)을 소개하는 곳이다. 하시마(일명 군함도)를 포함한 산업유산은 등재 과정에서 사도광산과 거의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고, 일본은 전체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시 내용은 당시의 약속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조선인 노동자를 향한 차별, 억압, 폭행 등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이곳에서 산업유산은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를 일궈낸 영광의 역사로 가득한 곳, 조선인과 일본인의 동료애가 넘쳐난 현장처럼 묘사돼 있다. 역사 왜곡에 진심(?)인 일본의 민낯이 드러나는 곳이다.

아이카와 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그것과 비교하면 진전된 점이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산업유산과는 상관도 없는 도쿄에 있는 것과 달리 아이카와 박물관은 사도광산 인근에 있다는 점이나 등재와 동시에 전시실을 만들어 공개했다는 점도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사도광산에서 일하다 희생된 노동자를 기리는 추도식도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시 내용, 규모 등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강제성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시 내용은 강제동원, 강제노역이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강제’라는 표현은 굳이 피했다. 사도광산에 얽힌 어두운 역사를 어떻게든 외면해 보겠다는 심산이 딱할 지경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를 가늠하는 교훈이다. 찬란했던 과거는 마땅히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 어느 국가라도 바라는 바이다. 동시에 어두운 과거를 되새기며 반복되지 않기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며 역사를 통해 얻는 효용이다. 날로 우경화되는 일본은 이것을 한사코 외면하려 하고 있다. 정말 산업유산에서, 사도광산에서 조선인의 강제노역, 부당한 차별과 폭력이 없었다고 믿는다면 전체 역사 명시, 희생자 추모 등을 끝내 거부하고 등재를 포기했어야 했다. 약속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니 세계유산 등재를 꼼수였다는 비아냥까지 듣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사죄는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고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왜곡, 아이카와 박물관의 ‘강제’ 표현 부재가 의심과 비판의 근거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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