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 압록강에 대규모 홍수,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2024. 8. 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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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있는 UN 북한 상주 조정관 공관.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여전히 비어있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제공


최근 압록강 유역의 홍수로 북한 지역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중순 세계식량기구 FAO 취둥위(屈冬玉) 사무총장의 평양을 방문을 계기로 UN 구호기구들의 북한 복귀 여부에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규모 자연재해를 입은 것이다. 최근까지 FAO뿐 아니라 세계식량계획 WFP, 세계보건기구 WHO, UN아동기금 UNICEF 등 UN 기구들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재개를 희망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 뒤에도 러시아, 중국 등 일부 국가를 빼고는 국제사회에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그런데 취둥위 사무총장의 지난달 방북(7월13일~16일)이 최근 들어 서먹해진 북한-중국 관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외교적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1963년 후난성에서 태어난 취 사무총장은 23살이던 1986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중국 정부의 농업 분야 관리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2019년 FAO 사무총장에 선출되기 직전에는 중국 정부의 농업농촌부 차관(2018년 3월~2019년 7월)을 지냈다. 이 런 점을 고려하면 취 사무총장의 방북에 정치적 고려가 깔려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 취둥위 사무총장은 북한에 들어가기에 앞서 중국 수도 베이징에 먼저 들러 주요 인사들과 잇따라 면담을 했다. 가장 먼저 7월 5일에 중국 농업농촌부의 당 서기 한쥔을 만났는데, 한 서기는 공산당내 실력자인 중앙위원이자 장관급이다. 이어 왕원타오 상무 장관, 마자오쉬 외교부 차관과도 개별적으로 만났다. 면담의 목적은 중국 정부로부터 FAO에 대한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및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북중 관계와 관련해 내밀한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재 중국과 북한 관계는 미지근한 정도를 넘어 냉랭한 사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비교해, 러시아는 북한과 밀착해 군사 동맹 수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추구해 온 중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중국은 언제나 북한에 대해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지원을 해주고 그것을 통해 북한에 대해 지렛대를 확보하려 했다. 심지어 북한의 핵 개발까지 사실상 눈 감아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가 북한의 후견국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3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까지 체결했다. 중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2인자인 마자오쉬 차관이 평양 방문을 앞둔 취둥위 사무총장을 베이징에서 접견하면서 어떤 주문을 했을지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둥위 사무총장이 북한 방문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12일 베이징에서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차관과 만나 FAO와 중국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고 FAO는 밝혔다. FAO 제공


북한에 들어간 취 사무총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하에 주민들이 농업 개발과 식량 안보 등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추켜세웠다. 북한이 여전히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는 말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성과로 자랑하는 평양 근교의 강동종합온실농장과 강동 중앙채소연구소 그리고 평촌 양어공장 등은 직접 둘러봤다.

취둥위 FAO 사무총장은 북한의 강동 중앙채소연구소를 방문해 북한이 첨단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다고 하는 이른바 원통형 남새 재배장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FAO 제공


취 사무총장은 또 FAO가 전문적인 기술과 국제경험을 제공할 준비가 됐다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 의사를 적극 표명했다. 북한 당국이 새로운 협력과 자원의 동원 기회를 모색해 달라면서 협조를 당부하는 자세도 보였다. 국제 기구의 구호와 지원을 하루 빨리 받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지원을 하려는 쪽이 오히려 마음이 더 급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FAO는 보도자료에서 취 사무총장이 북한의 고위 당국자를 만났는 지 여부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방북 직전 방문국인 몽골에서는 오흐나 후렐수흐 대통령과 함께 나담 축제에 참석하고, 총리와 외교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식량농업경공업 장관 등까지 두루 만났다고 홍보한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 당국이 FAO의 지원을 받기 위해 취 사무총장의 방북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반기지는 않았던 같다.  

취둥위 사무총장이 방북 기간 동안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또한 북중 간의 어색한 관계를 방증해 주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 정부의 고위 인사나 민간 대표단의 방북 소식을 내외에 적극 선전하는 것과 비교하면 더 차이는 더 부각된다. 취둥위 사무총장이 북한에서 공식 접견한 인사는 평양 주재 왕야진 중국 대사 뿐이다.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국제기구 수장이 방문국에 있는 자국 대사관에 들어가 대사를 만나 사진을 찍어 공개한 것은 좀 모양새가 빠진다. FAO가 북한에서 하고 있는 각종 지원 사업을 중국 정부가 든든하게 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취둥위 사무총장 일행이 북한 방문 기간 중인 지난 7월 14일 평양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 왕야쥔 중국 대사와 회담 후 기념 촬영을 했다. 가운데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이 취둥위 사무총장, 취 사무총장의 오른쪽에 양복을 입은 사람이 왕야쥔 중국 대사. 왕 대사의 오른쪽은 FAO의 막시모 토레로 굴렌 (Maximo Torero Cullen)수석 이코노미스트, 취 사무총장의 왼쪽은 갓프레이 마그웬지 (Godfrey Magwenzi) 비서실장. 나머지는 주중 대사관 측 배석자.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 제공


하지만 서방 일각에서는 중국 출신인 취둥위 사무총장이 FAO의 활동을 자국의 세력 확장에 이용할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FAO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추진하는 이른바 '일대일로' 구상에 맞춰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독일 지속가능성 개발연구소(IDOS)의 막스 오토 바우만 박사는 지난해 8월 한 기고문에서 파나마, 라오스 등 일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FAO의 몇몇 프로젝트는 중국의 지정학적, 경제적 이익에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FAO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투명성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UN 기구의 사무총장이 해당 기구를 과도하게 자국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다면 문제다. 그것은 UN 자체의 감독은 물론 제도 내부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선거나 투표 과정을 통해 바로 잡아져야 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가 인도주의적인 사업이고 어떻게 하면 자국에 유리한 정치적 프로젝트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난 해결 지원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문을 닫은 북한과 접촉면을 넓혀보려는 취둥위 사무총장의 행보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기는 힘들다. 앞으로 FAO가 북한에서 지원 사업을 본격 재개하고 WFP, WHO, UNICEF 등도 평양 사무소로 점차 복귀한다면 북한이 국제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개방될 수 있다. 지난달 UNICEF와 WHO 등은 홍역, 소아마비 등 예방 백신 60만 명 분을 항공편으로 북한에 제공했다.

지난 7월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백신을 내리는 모습. UNICEF 제공


FAO도 지난해 7만 5600 달러 상당의 농기계를 북한에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물품은 2륜형 트렉터 10대, 이동식 콩 탈곡기 5대, 휴대용 펌프 30대, 배낭형 태양광  분무기 5대 등이다. UN 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도 FAO가 신청한 이들 농기계에 대해 지난해 4월 3일 인도주의적 물품으로 인정해 제재 면제 승인을 내줬다. UN 안보리가 북한에 초강력 그물망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그나마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틈을 열어놓고 있다.

지금 남북 관계만 보면 당장 내일 무슨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엄중하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을 빌리고 북한은 러시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강대강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사이 북한은 조금씩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내부를 탐색하고 대화의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는 것은 중국보다 우리가 더 급하다.

최근 북한에 신의주 부근에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UN에서 발언권이 세진 중국이 국제기구를 앞세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앞장설 수도 있다.

*필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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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swkang24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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