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金金金金金…'넘사벽' 저변·특급 행정으로 새역사 쓴 한국 양궁
(파리=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한국 양궁이 기어이 올림픽 금메달 5개 싹쓸이의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4일 프랑스 파리에서 끝난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에서 이 종목에 걸린 5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왔다.
앞서 남녀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혼성전),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대표팀은 이날 김우진(청주시청)이 브레이디 엘리슨(미국)과의 결승전에서 슛오프 명승부 끝에 승리하면서 마지막 5번째 금메달까지 챙겼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거둔 역대 최고 성적이다.
한국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도 양궁에서 전 종목 석권을 해낸 바 있으나, 당시는 혼성전 도입 전이어서 양궁에 걸린 금메달이 4개였다.
금메달 5개 싹쓸이는 양궁인들의 예상도 훌쩍 뛰어넘는 결과다. 대한양궁협회는 3∼4개 정도의 금메달을 예상했다.
이번 여자 대표선수들의 경험 부족과 중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비약적인 기량 향상 등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올림픽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파리에서도 태극궁사들은 최강의 위용을 뽐냈다.
양궁 한류도 막지 못한 두꺼운 저변의 한국 양궁
양궁 평준화 흐름의 중심에는 '양궁 한류'가 있다. 각국 협회가 한국인 지도자들을 영입해 경기력 향상을 시도한 지 오래다.
선수들이 직접 한국으로 와 '양궁 과외'를 받기도 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마라크수 달메이다(브라질), 여자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리자 바벨랭(프랑스), 디피카 쿠마리(인도) 등 강자들이 충북 괴산의 김형탁양궁훈련원을 찾아 특훈했다.
바벨랭은 동메달을 따낸 뒤 기자회견에서 5년 전 프랑스 대표팀의 한국 전지훈련에서 2012 런던 올림픽 2관왕인 기보배 현 광주여대 교수와 함께 훈련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번 파리 대회에서 선수들이 한국 지도자의 지도를 받은 나라는 12개국이나 된다. 그중 8명은 파리에서 직접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권용학 감독의 중국 여자대표팀(여자 단체전 은메달)도, 오선택 감독의 프랑스 대표팀(남자 단체전 은메달, 여자 개인전 동메달)도 한국을 넘지는 못했다.
한국의 선진 기술을 익혀도 한두 명의 톱 레벨 선수들만으로는 한국을 넘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 양궁의 매우 두꺼운 선수층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결과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올해 등록한 실업 양궁 선수는 404명이다. 404명의 성인이 활쏘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풍부한 선수 자원을 가진 나라는 한국뿐이다.
혼성 단체전 동메달과 남자 개인전 은메달을 따낸 미국의 브레이디 엘리슨은 "(한국은 많은 선수가) 궁사로 훈련받은 상태에서 대학교에 들어가고, 양궁이 직업인 선수가 많다"면서 "미국에서는 내가 활쏘기로 밥벌이하는 유일한 궁수"라고 말했다.
'벽에 동전 던지기' 놀이를 할 때 동전을 하나만 든 자와 404개를 든 자의 승부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이토록 빼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밑바탕에는 양궁 실업팀을 운영하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있는 셈이다.
최고의 궁사들 '현미경 뒷바라지'한 양궁협회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다고 해서 늘 우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변수를 최대한 통제하며 최상의 실력을, 최고의 무대에서 있는 그대로 뽐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대한양궁협회의 몫이었다.
양궁협회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물 샐 틈 없는 '완벽 지원'으로 선수들을 도왔다.
도쿄 올림픽 때처럼 진천선수촌에 앵발리드 양궁 경기장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세트'를 설치했다.
간판, 대형 전광판 등 구조물을 대회 상징색까지 반영해 세트 경기장에 구현해냈다.
경기장 출입구에서 사대, 미디어와 만나는 인터뷰 공간까지 가는 동선을 실제와 똑같이 만들고 장내 아나운서 코멘트, 관중의 환호성에 소음까지 프랑스어와 영어로 틀어 현장감을 높였다.
이 '진짜 같은 가짜 앵발리드'에서 많게는 하루 600발의 화살을 쏜 선수들은 진짜 앵발리드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센강변에 있는 앵발리드의 까다로운 강바람에도 대비했다.
센강에서 앵발리드 경기장까지 거리는 약 200∼300m다. 양궁협회는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300m 떨어진 곳에 훈련장을 마련해 6월 2일부터 사흘간 훈련을 진행했다.
이는 '신의 한 수'였다.
3관왕에 오른 임시현은 "(앵발리드는) 바람을 탈 것 같은데 안 타고, 안 탈 것 같은데 타고…조금 종잡을 수 없는, 조금 까다로운 경기장"이었다면서 "강바람 훈련 덕에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양궁협회는 파리 현장에서의 선수 지원에도 온 힘을 쏟았다.
회장사인 현대자동차 도움을 받아 프랑스 근교 일드프랑스에 위치한 140년 전통의 종합 스포츠클럽 '스타드 프랑쉐'를 대회 기간 통째로 빌렸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편한 마음으로 기량을 점검할 수 있었다.
또 선수들이 경기 사이에 푹 쉴 수 있도록 앵발리드에서 2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방 6개에 더해 2층 라운지를 통째로 빌렸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지난해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길에 동행하면서 시간을 쪼개 선수 지원 시설들을 둘러보며 동선 등에 문제점은 없는지 직접 체크했다고 양궁협회 관계자들은 전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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