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이어 올림픽도 3관왕'태극마크 2년 만에 '여제' 우뚝 선 임시현[파리올림픽]
임시현의 ‘성공 스토리’는 2023년에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시작한다.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그는 개인전, 단체전 및 혼성단체전을 휩쓸었다. 아시안게임 3관왕은 한국 양궁 역사상 37년 만에 나온 큰 위업이었다. 그런 성공은 다시 재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모두 생각했다.
임시현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임시현은 파리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단체전(혼성전)을 모두 휩쓸었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 안산(광주은행)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올랐다.
임시현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파리올림픽 여자 단체전 우승을 이끌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이달 2일에는 남자대표팀 에이스 김우진(청주시청)과 혼성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3일 개인전에선 국가대표 동료를 준결승과 결승에서 잇따라 제치고 세 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 생애 처음 참가한 올림픽 무대에서 거둔 믿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사실 임시현의 기적은 대회 초반에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달 25일 열린 랭킹라운드에서 세계신기록(694점)을 작성하며 차원이 다른 실력을 입증했다. 단체전에서는 고비마다 과녁 가운데 화살을 적중시켰다. 왜 그가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에이스’로 불리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세계 양궁계에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임시현은 파리올림픽을 거치면서 ‘양궁여제’로 우뚝 섰다. 국제무대에 등장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이룬 기적같은 변화였다.
임시현이 처음 활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어린 마음에 화살을 과녁에 맞히는 것이 놀이처럼 재밌었다. 양궁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던 그에게 첫 고비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양궁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향인 강릉에는 마땅한 중학교가 없었다. 고심 끝에 부모님 곁을 떠나 원주(북원여중)로 홀로 유학을 감행했다. 중학교 때 재능을 발견한 뒤 서울체고로 진학하면서 양궁에 더 전념할 수 있었다.
임시현은 ‘어린 악바리’로 불린다. 어릴 적부터 엄청난 훈련량이 배어 있다. 경험이 적은데도 큰 대회에서 주눅 들지 않고 시원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대담함의 비결은 ‘연습량’이다. ‘결과는 연습한 만큼만 나온다’는 말을 늘 버릇처럼 반복한다.
임시현은 파리올림픽 3관왕을 확정지은 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아시안게임 바로 다음 대회인 파리 올림픽에서 또 3관왕을 해 영광스럽다”며 “누가 ‘항저우에서 3관왕을 했는데 바로 다음 대회에서 또 3관왕을 하는 게 쉬울 거 같냐’고 했는데 하다 보니 그 바늘구멍을 통과해 버렸다”고 웃었다.
승부처에서 항상 10점을 적중시키는 비결을 묻자 대답이 재밌다. 바로 ‘억울해서’다. 임시현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빨리 끝나버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더 악착같이 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활을 쏘는지 잘 보여준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임시현은 하루에 수백 발씩 화살을 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저녁에는 야간자율훈련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나면 정말 푹 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올림픽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가 대회 기간 턱에 테이프를 붙인 것도 활시위를 너무 많이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턱에 자국이 반복된 것도 모자라 아예 착색됐다고 한다.
임시현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궁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의 양궁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은 스포츠 세계의 변치 않는 진리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이미 금메달 3개를 쓸어담은 임시현은 앞으로 1개만 추가하면 최다 올림픽 금메달 기록(4개)을 보유한 ‘신궁’ 김수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2개를 더하면 김수녕을 뛰어넘는다. 그의 나이와 재능을 감안하면 4년 뒤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대기록을 이룰 가능성도 충분하다.
임시현에게 중요한 것은 금메달 숫자가 아니다. 대신 꾸준하게 높은 위치를 지키는 선수가 되는 것이 진짜 목표다. 그는 “다음 올림픽은 4년 뒤에 열리는 만큼 당장 와 닿지는 않는다”며 “지금을 즐기면서 꾸준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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