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국민동의청원과 민주주의
지난 6월 국회에 올라온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청원과 7월 올라온 그 반대 청원이 언론을 장식한 이후, 대다수 시민들이 존재조차 몰랐을 국회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는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7월의 마지막 날 접속해 본 국민동의청원 웹사이트는 팝업창으로 먼저 방문자를 반겼다.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및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 요청에 관한 청원이 (…) 50,000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다소 무심하게 팝업창을 닫았더니 뒤에 팝업창 하나가 더 숨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심판청구 촉구 결의안에 관한 청원이 2024년 7월22일 10시25분 기준으로 50,000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어 이러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팝업창을 닫았다. 아니나 다를까. 팝업창들을 모두 닫고 난 웹사이트 대문에 ‘동의 진행 중’으로 떠 있는 청원 중 하나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청구 촉구 결의안에 관한 청원”이었다.
이쯤 되니 청원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청원은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해 일정한 사안에 관한 자신의 의견이나 희망을 진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청원은 무엇에 대해 할 수 있는가. 법문으로 보면 사실상 어떤 요청이든 가능해 보인다: “피해의 구제,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이나 징계의 요구,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그 밖에 청원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청원법 제5조).” 청원 사항이 국회의 소관인 한 국민동의청원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유사한 풍경은 국회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펼쳐졌다. 서울시의회는 2022년 7월 의원 발의로 제정했던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한 폐지 청원을 심의하여 2024년 6월 해당 조례를 폐지했다. 이 청원은 참여적 제도인 주민조례 청구제도에 따라 2만5000명의 서명을 받아 상정되었다. 이 사례는 하나의 조례가 대의제적 절차로 제정되어 참여적 절차로 폐지된, 그리고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에 따라 제정되어 반대하는 입장에 따라 폐지된 사례이다.
이런 제도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은 다소 의아할 수 있겠다. 시민이 대의민주주의의 전당인 의회(국회와 지방의회)에까지 직접 자신들의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발안/청원이라는 참여민주주의적 절차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조화다.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중위투표자 중심의 의회정치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항을 주민들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통해 확인하고, 정치 엘리트들이 해당 정책을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만명 혹은 특정한 수의 동의를 규정한 것은 그 정책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그만한 보편적 동의가 있음을 확인하려는 취지이다. 주민발안 혹은 국민청원이라는 현대적 참여민주주의 제도의 설계자들은 이에 따라 정책 사각지대 해소와 주민들의 보편적 권익 확장을 염두에 두었지, 최근 전개되는 상황처럼 특정 정당/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는 쟁론적 장의 형성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역시 민주주의의 일부이다. 다만 두 가지 사항을 환기해본다. 하나는 동원력이 약한 정책 이슈가 묻히게 될 가능성이다. 행동에 적극적인 시민들은 이러한 참여적 제도를 활용하여 세를 드러내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학습했다. 반면 애초에도 잘 들리지 않았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와글거리는 이슈들에 밀려 웹사이트 대문을 장식해볼 기회도 없이 사라진다. 며칠 만에 5만명이 동원되는 시대에 그 숫자는 진리를 가르는 기준도, 사안의 중대성을 가늠하는 문턱도 아니다. 국민청원제도 이면의 취지는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의 제도로는 대한민국 양대 정당의 해산심판 청구 같은 ‘끝장’ 청원이 동시에 제기되는 치킨 게임 상황을 적절히 처리할 수 없다. 이런 제도적 공백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청원의 처리 주체인 의회가 적절한 관행을 만들어가고, 장기적으로는 꾸준한 실험을 통해 양극화된 정치적 상황을 조정할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의 의의를 살리면서 대중적 에너지를 소화할 수 있는 진중한 대의제를 작동시켜야 한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영원한 숙제를 한여름의 청원 공방이 일깨운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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