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빌런에게 자비를!
“의제와 관련돼서 지속적인 토론 요구를 했습니다만 반복적으로 우리 위원장께서는 토론을 일방 종결하고 계십니다. 이게 한두 번 반복된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반복이 되면 우리 국민의힘 위원들이 위원장의 의사진행에 대해서 당연히 항의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국민들이 위원장의 이와 같은 의원들의 발언을 금지시키고 일방적으로 종결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는 비판을 합니다. 언론에서 빌런이라는 얘기까지 나와요.”
“세상 이치가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집권 여당입니다. 저한테 빌런 얘기하시는데요, 그와 반대로 빌런을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총선 이후에 국민의힘 의원님들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야 합의된 것만 통과시키고,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은 다 거부권 행사하겠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반헌법적 발언 아닙니까?”
지난달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간사위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이 설전의 주인공이었다.
찰나의 순간이 유독 인상 깊게 각인되는 경우가 있다. 이 광경이 그랬다. 상임위건 본회의건 국회에서 여야가 다투는 건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공개회의에서 서로 ‘네가 더 빌런이야!’라고 대거리하는 장면은 새삼스러웠다. 의회 권력을 쥔 세력과 행정 권력을 쥔 세력이 무한 대립하는 ‘이중권력’ 체제의 대한민국 현실을 이보다 잘 보여주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벌인 소극은 이어질 장면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본회의에서 여당의 필리버스터와 야권의 법안 처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재의결 실패로 인한 폐기의 반복이다. 법사위는 이날 민주당 등 야권이 주도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을 의결했는데 이 쳇바퀴에 올라탄 것에 불과하다.
‘빌런’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대략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언맨> <토르> 등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다. 아이언맨과 토르가 인간과 지구와 우주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히어로’, 즉 영웅이라면 반대편에 있는 악당이 바로 빌런이다. 요즘은 일상생활에서 기이한 행동을 한다거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빌런’으로 부르는 식으로 용법이 확대됐다.
만화, 영화 등 창작물 속의 빌런은 세상에 대한 증오와 탐욕, 히어로에 대한 시기와 열등감 등에 사로잡혀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히어로가 목숨을 걸고 이를 수습해 나가는 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쾌감을 안긴다. 우리는 이야기의 막판에 빌런이 교묘하게 추격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안다. 그래야 다음 편이 나올 수 있으니까. 더 들여다보면 히어로와 빌런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히어로는 선과 밝음의 세계관을, 빌런은 악과 어두움의 세계관을 대변하는데 이는 인간의 양면성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그럴진대 오늘날 한국에서 서로 싸우고 배척하는 두 세력 가운데 한쪽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나 야권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통령과 여당이 야당에 일정한 양보를 할 의사가 없는 구조에서 갈등과 대립의 지속은 피할 수 없다.
흔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견제와 균형’이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것만으로 작동하진 않는다. 대화와 타협 없이 대립과 갈등만 있는 민주주의가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막대하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사회적·국가적 문제에 대해 최선은커녕 차선 또는 차악의 대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20년 전 경고음이 나온 ‘저출생·고령화’ 문제도, 6개월 전 의대 증원을 계기로 터진 의료계 파업 사태도 요지부동이다. 증오의 기운은 정치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보고서를 보면 시민들이 느끼는 갈등의 수위는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통합은 낮아졌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58%였다. 서로가 서로를 빌런으로 치부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필요한 정신은 ‘빌런에게 자비를!’일지 모른다.
김재중 사회부장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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