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살아만 있다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참여자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 소리로 화답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표정은 밝았고 홀가분해 보였다. 8월3일 개최된 제1회 퀴어청소년 무지개백일장 시상식 현장의 풍경이다. 평소 1대1 상담과 긴급 지원 활동을 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분위기와도 사뭇 달랐지만, 정성스러운 심사평이 담긴 상장과 꽃다발은 화사함을 더해주었다.
무지개백일장은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학교 안팎에서 하게 된 경험과 고민을 자유롭게 쓰며 일종의 해방감을 맛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평소 말하지 못하던 사연들은 작품으로 승화되었고, 차별의 경험은 이야기 소재가 되었으며, 누군가의 마음 상태를 엿보는 듯한 글들은 마치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호소문 같았다.
첫사랑의 풋풋함은 아우팅의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학교 안 혐오 표현은 소음 공해로 표현되었다. 화단에 꽃들이 모여 있지만 도로 한가운데 위험하게 핀 들꽃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꿋꿋하게 살아남기를 다짐한 글도 눈에 띄었다. 학교가 안전하지 않은 공간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참여한 시상식 자리였으니, 환호와 박수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지난 7월15일 김문수 의원실 주최로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 입법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이날 공개된 법안 초안에는 ‘성소수자 학생’이 존재하지 않았다. 20년 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성적지향’ 문구조차 담지 못했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소수자 학생 권리 보장’ 규정도 없었다. 토론회 당일 아쉬움을 전하며 법안을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학생 인권은 보장될 필요가 없다고 야유를 보내는 일부 교사들의 요구를 넘어서진 못했다.
22대 국회에서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37명의 의원이 의원실 문 앞에서 ‘인권방패’ 현판을 게시하며, 학생인권법 제정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권리를 확장하고 학생도 인권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실천하겠다는 약속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선택적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면. 학교의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생 인권에 ‘모든’ 학생을 포용하겠다는 약속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앞으로 더 험난할 것만 같다. 학생인권법 제정에 동의한 의원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학생인권법’을 말하는 이유는 무지개백일장 수상 작품에 등장한 글 때문이다. “살아만 있다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그것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그 과정이 아플 수 있지만, 기억하자.”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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