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공공인 듯, 공공 아닌, 공공 같은…
공공의료 차원 개선시급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사실상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대란의 무풍지대다. 대학병원과 달리 거의 100% 전문의 중심 체제로 운영되는 까닭이다. 이뿐만 아니다. 축적된 중증 환자 진료에 대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대란 여파이긴 해도 올해 상반기만 의료수익이 전년 대비 17% 뛰었다. 입원 대기 중인 환자만 매일 수십 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떼돈’ 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반대다. 올 상반기만 당기순손실이 22억 원 발생했다. 아무리 병원을 찾은 환자가 많아도 기본 병상이 정해져 있으니 병원 측은 올해 45억 원 정도 적자가 날 것으로 추산한다. 현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탓만도 아니다.
왜 그럴까.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전국에서 환자 부담금이 가장 낮은 병원이지만, 정부와 자치단체의 운영비 지원금이 거의 없다. ‘공공의료기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나,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까닭이다. 국립병원임에도 국립병원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전국 233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부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건강보험 보장률 80.8%로, 전국에서 환자 부담률이 가장 낮은 병원으로 확인됐다. 본원인 한국원자력의학원도 건강보험 보장률 75.1%로, 3위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교육부·보건복지부·자치단체에 소속된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직할 출연 연구기관’인 원자력병원은 연구와 병원 기능을 동시에 하는 곳이다. 연구개발(R&D)을 수행하면서 의료 수준 향상과 재정적 자립까지 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의무’는 당연하지만, 운영비를 지원받을 ‘권리’는 없다.
물론 운영비 보조 지원액이 ‘0’은 아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응급실 운영비 보조로 기장군과 부산시가 9대 1 비율로 지원한다. 그런데 응급실은 의사 5명, 간호사 13명 등 상시 인력의 인건비만 연간 22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지원금은 10억 원 정도. 이마저도 지난해 8억4000만 원으로 줄더니 올해는 7억5000만 원으로 더 감소했다. 응급실을 운영할수록 적자인 구조다. 그럼에도 기장지역 내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해 응급실은 계속 운영해야 한다. 지원금을 받는 유일한 분야마저 이렇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사실 ‘태생’부터 공공의료기관이다. 2004년 7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원자력의학원 동남권 분원 설립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보고서는 “암 전문병원을 부산 경남지역에 건립하는 계획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의 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도 “‘원전시설의 사회적 수용성 확대’ 측면이 다른 검토 항목의 부정적인 평가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평가해 설립 타당성을 인정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설립·운영 관련 법적 근거는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진흥법’ 제13조의 3이다. 법령에 따른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정체성은 ▷원전 지역 주민 위해 설립 ▷첨단 의료 서비스 제공 및 현장 방사선비상진료 수행 ▷기장군 유일의 공공의료기관이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진 환자 전담병동을 운영하면서 900여 명의 코로나19 확진 환자에 입원치료를 제공했으며 선별진료소를 운영했다. 1만7000명의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진료하고 PCR 검사를 시행했다. 60세 이상 코로나19 고위험군과 치매·혈액투석 환자의 입원치료도 도맡았다.
또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암 치료 외에도 지역응급의료기관, 소아청소년과 진료 등 지역 필수의료 역시 수행 중이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중증환자의 비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60%나 급증했다. 또 기장지역 내 환자 이송 비율도 높아지면서 이송시간과 이송거리도 줄었다. 국립중앙의료원 헬스맵에 의하면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심폐정지환자 이송비율은 전국 시·군·구 평균인 58.6%보다 훨씬 높은 79.4%였다. 중증응급환자의 병원 도착까지 소요시간은 13분으로, 시·군·구보다 3∼5분 짧다.
사정이 이렇다면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먼저 지역 필수의료를 맡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2016년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올해 중 심혈관센터도 문을 열 예정이다. 심혈관센터가 개소하면 심뇌혈관 응급 의심환자의 이송시간과 거리도 대폭 줄어들 것이다.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전달체계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공의료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앞으로 남고 뒤로 모자라는’ 구조로는 안 된다. 병상도 대거 확충할 필요가 있다. 필수 진료과목도 더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중입자치료센터와의 협업, 양성자 치료시설 도입 등을 통해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암치료의 선도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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