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돈을 벌기로 했다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2024. 8. 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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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얼마 전 영화관에 일하러 갔다가 어느 지역극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극장이야 어렵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날은 괜히 습한 날씨처럼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요즘처럼 여기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이야기도 부쩍 많이 들린다. 문화 예술에 종사하던 친구들은 하던 일이 평년 대비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작년부터 그렇게 예산을 알뜰살뜰하게 삭감해 댔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록적인 폭염 탓인지 기분 탓인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느낌이 든다.

에어컨으로도 해소되지 않던 열대야 때문에 어제는 늦은 밤 주역 책을 뒤적거리며 점괘를 내보다가 ‘중뢰 진괘’와 만났다. ‘도올 주역 강해’에 따르면, 51번째 괘인 ‘중뢰 진괘’는 흔들림 우레 천둥 같은 뜻을 가진다. ‘진괘’의 “흔들림은 안정적으로 정착시킨다기보다는 흔들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628쪽)”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흔들림은 보통 감각이 아니라 “공포스러울 정도의 느낌인 한편, 단순한 패닉이 아니라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깊은 수준의 것(629쪽)”이다. 이때는 공구계신(恐懼戒愼)하면 짧은 우레가 지나가고 복이 찾아온다고 ‘진괘’는 답하고 있다.

땅이 뒤흔들리는 느낌. 실제로 그랬다. 지난주 우리는 정화조 공사를 한다고 애먼 사무실 뒷마당을 파 뒤집었다. 8년 동안 독립영화를 배급해 온 우리는 일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신기한 시장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버텨서는 안 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자본 시장에 내던져진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오랫동안 뭘 하다 보니, 예술가인지 상인인지 모를 자기모순에 빠진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지만 지원사업과 시장 상황에 의존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그러는 동안 품었던 마음마저 녹여버릴 것 같은 폭염을 만난다. 이때 내려친 우레와 같은 흔들림에 놀란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자, 여기서 미친 모험의 강행! 카페 영업 신고를 위해 파묘가 아닌 파(정화)조 하고, 우리는 여전히 배급사인 채로 ‘카페 인디샷’을 오픈하기로 했다.

‘인디’는 인디펜던트의 줄임말로 독립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이제껏 인디펜던트 필름(독립영화)을 배급했다. ‘샷’은 중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다. 한 발의 무엇, 한 잔의 무엇, 한 번의 무엇, 당신이 시도하는 모든 것이 된다. ‘카페 인디샷’은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의 무엇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배급하기 위한 우리들의 마지막 한 발이다.

그런데 그게 왜 카페냐고 묻는다면 당신을 납득시킬 만한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8년 전 왜 배급을 하느냐는 물음에도 그랬다. 왜 안 되느냐고, 그냥 한번 해보라고 (why not? Take a shot!) 되받아치는 경솔함만이 그때도 지금도. 영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배급을 하겠다고 떠들어대고, 커피가 뭔지도 모르면서 카페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아이 같은 단순함만이 이렇게 응답할 뿐이다.

말하건대 이제부터는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 생각이다. 가능한 한 많이.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너네 변했다는 욕도 들어볼 작정이다. 그렇게 번 큰돈으로, 글쎄 나는 디올백 같은 건 갖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영화의 제작도 돕고 싶고, 지역 극장에 후원도 하고 싶고, 얼마 전 후원 모금을 하던 친구들에게 ‘0’ 하나를 더 붙여서 돈을 보내고도 싶고, 생색만 엄청나게 내는 나랏돈 안 쓰고 ‘내돈내산’으로 마음껏 배급도 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들의 독립적인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중뢰 진괘’의 공구계신은 원래 두려워하며 경계하고 자신을 닦고 성찰한다는 뜻이다. 이 맥락에서는 해석하기 다소 애매하지만, 나는 자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여기서 이제 힘을 낸다. 그러니까 모두 다시 한번 힘을 내요. 부서지고 흔들리는 위태로운 땅 위의, 변화하고 폭발하는 시간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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