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실학자가 지향한 음악문화 풍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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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 달간 부산 16개 구·군 소공연장에서 일상 속 예술 향유를 위한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들어내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조선시대 풍류방 음악이 곧 장르가 되어 오랜 시간 전승되었듯 소공연장의 철학과 가치를 담아 출발한 원먼스 페스티벌도 부산의 문화예술 생태계에 조용한 변화를 이끌며 지속성과 자생력을 갖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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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 달간 부산 16개 구·군 소공연장에서 일상 속 예술 향유를 위한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들어내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3년째 열리는 ‘원먼스 페스티벌-우리 동네 문화살롱 페스타’는 민간 문화공간을 기반으로 매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릴레이로 열리는데 이 축제에 필자는 프로그램 선정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의 수가 유료화로 전환했음에도 전석매진 행렬로 늘어났음이 증명되었고, 그 숫자는 매년 경신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런 소규모 공간에서 심미적인 음악을 향유한 서양의 살롱에 비견될 만한 예는 없었을까?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전기의 음악은 왕실과 상류층 양반이 음악의 주 수용층인 성리학 중심의 유교적 이상을 위한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이 강했다. 수백 명의 악공이 연주하는 대규모 궁중음악과 의식음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악기의 소실과 악공이 각 지역으로 흩어짐으로 인해 규모 축소와 함께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사회변화와 함께 조선 후기 음악은 실학파를 중심으로 한 풍류방이라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점차 음악의 수용층이 관에서 민간 중심으로 변화하게 된다.
18세기 실학자들은 연행(燕行)을 통해 청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물을 배움의 자세로 탐구했고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담헌 홍대용이 16세기 선교사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양금이라는 악기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처음으로 연주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홍대용은 조선의 과학자로 수학은 물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북경 천주당의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고, 서양음악 이론을 접하며 중국 중심의 화이적 음악관에서 벗어나 우리 음악의 음높이 산출하는 척도를 수학적인 계산에 의한 정확한 수치로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유춘오악회라는 풍류방을 열어 사대부 양반계층인 선비와 중인, 그리고 전문 악공들이 모여 신분의 고하를 떠나 가야금 거문고 양금 생황 등의 악기를 함께 연주하며 심미적인 음악 자체를 즐겼다. 전문 연주자인 악공과 함께 합주를 한 선비들의 뛰어난 연주 기량은 물론 새로운 기보법을 고안하여 거문고 양금의 악보집을 편찬하기도 했으며, 조선후기 다양한 풍류방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실학 가치관을 음악에도 적용해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연주자 중심의 순수음악을 실천했다. 풍류방 활동을 함께한 선비들은 후원자 역할도 자처해 악공들에게 예술가로서의 대우와 안정된 예술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수준 높은 예술문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18세기 실학자들의 풍류방 음악은 그 시대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이 정악(正樂)이라 불렀던 음악이 곧 장르가 되어 국악의 한 갈래로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조선시대 풍류방 음악이 곧 장르가 되어 오랜 시간 전승되었듯 소공연장의 철학과 가치를 담아 출발한 원먼스 페스티벌도 부산의 문화예술 생태계에 조용한 변화를 이끌며 지속성과 자생력을 갖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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