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94> 백성의 목숨을 이어주던 콩의 꽃을 시로 읊은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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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벼는 이미 말라 누렇고(早稻已枯黃·조도이고황)/ 늦벼는 생기가 사라졌네.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콩꽃이었다.
어제 아침 목압서사 아래 복오리민박집 자그마한 텃밭에 앙증맞게 작은 콩꽃이 허옇게 피어 있는 걸 보았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위의 시처럼 콩꽃이 없는 사람들 목숨을 이어준다고 여러 차례 들은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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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벼는 이미 말라 누렇고(早稻已枯黃·조도이고황)/ 늦벼는 생기가 사라졌네.(晩禾生氣斷·만화생기단)/ 물 댄 곳은 한 군데뿐이고(縱有一漑處·종유일개처)/ 이삭이 겨우 한 다발 패었다네.(吐潁縡秉稈·토영재병간)/ 저 아래 습기 찬 밭 돌아보니(眷彼下濕田·권피하습전)/ 콩꽃이 완전히 피려 하네.(菽豆花欲滿·숙두화욕만)/ 백성의 목숨 오직 이것에 달렸으니(民命唯在此· 민명유재차)/ 다행히 모진 가뭄 늦출 수 있으려나.(魃虐幸可緩·발학행가완)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신 조경(趙絅·1586~1669)의 ‘을유년(1645) 윤6월 29일, 이날 장양절이 끝났다. 마침내 큰 가뭄에 대한 시를 짓다(乙酉閏六月二十九日長養節終于是日遂作大熯詩·을유윤육월이십구장양절종우시일수작대한시)’ 일부이다. 장양절은 만물을 자라게 하는 시절로 봄철을 이른다고 한다.
큰 가뭄이 들어 올벼는 누렇게 말랐고, 늦벼는 생기가 없어져 버렸다. 앞으로 뭘 먹고 살 것인가.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콩꽃이었다. 아, 저 콩이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백성 목숨이 오로지 저기 콩에 달려 있다. 콩꽃이 지면 콩이 열린다. 그것으로 백성의 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게다. 시인은 그 꽃이 반갑다고 읊었다.
콩꽃은 가을 벼를 추수하기 한참 전에 핀다. 배를 곯던 백성은 여름 지날 무렵 피기 시작하는 콩꽃을 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살았구나! 콩꽃이 지면 그 자리에 콩꼬투리가 열린다. 꽃 하나에 꼬투리 하나가 달리고, 그 속에 콩알이 1~5개 들어 있다. 콩은 밥에 넣어 먹기도 하지만 두부와 콩국도 해 먹고 메주를 쑤어 간장 된장을 담근다. 우리네 먹을거리에서 가장 친근하기도 하고 빠질 수 없는 곡물이 콩이다. 콩꽃은 그런 꽃이다. 다른 꽃과 달리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 뒤를 생각하며 반기는 꽃이다.
어제 아침 목압서사 아래 복오리민박집 자그마한 텃밭에 앙증맞게 작은 콩꽃이 허옇게 피어 있는 걸 보았다. 피서객들은 떠들고 노느라 콩꽃이 핀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위의 시처럼 콩꽃이 없는 사람들 목숨을 이어준다고 여러 차례 들은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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