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와 붙어먹은 자들을 포용하라” 명이 요구한 문서가 왔다
- 명량승첩 뒤 새로운 전투 대비
- 장수 파견해 새로 만든 배 검사
- 왕은 장군에게 육고기 하사도
11월17일[12월25일]
비가 계속 내렸다. 양경리(楊經理, 양호)의 차관이, 명의 요구에 따라 작성된, 초유문(招諭文, 왜적에 붙었던 자들을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포고문)과 면사첩(免死帖, 사형시키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증명서)을 가지고 왔다.
11월18일[12월26일] 맑음.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다. 윤영현이 와서 만났다. 정한기도 왔다. 몸에 땀이 났다.
11월19일[12월27일] 흐림.
배 조방장과 장흥부사가 와서 만났다.
11월20일[12월28일]
계속 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었다. 임준영이 완도를 정탐하고 와서 적선이 없었다고 전했다.
11월21일[12월29일] 맑음.
송응기등이 산에서 일할 군사들을 이끌고 해남으로 소나무를 베러 갔다. 이날 저녁에 순생(順生)이 와서 잤다.
11월22일[12월30일]
흐리다 개다 했다. 저녁에 김애가 아산에서 돌아왔다. 그는 유지(有旨)를 가져온 사람인데, 이달 초 10일에 아산집에 들러 집 편지도 받아 가지고 온 것이다. 밤에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도 크게 불었다. 장흥에 있던 적이 20일에 물러갔다는 소식이 왔다.
11월23일[12월31일]
바람이 크게 불고 눈도 많이 내렸다. 이날 명량승첩에 대한 장계를 썼다. 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아산 집에 편지를 쓰자니 죽은 아들이 생각나 눈물을 거둘 수 없었다.
11월24일[1598년 1월1일]
비와 눈이 내렸다. 서북풍이 연이어 불었다.
11월25일[1월2일]
눈이 내렸다.
11월26일[1월3일]
비와 눈이 내렸다. 추위가 갑절이나 혹독하다.
11월27일[1월4일] 맑음.
이날 장흥의 승첩 계본을 수정했다.
11월28일[1월5일] 맑음.
계본을 봉했다. 무안에 사는 진사 김덕수가 군량으로 벼 15섬을 가져와 바쳤다.
11월29일[1월6일] 맑음.
마 유격(마귀,麻貴)의 차관 왕재(王才)가 “명나라 수군이 뱃길로 내려오는 중이다”고 했다. 전희광과 정봉수가 오고 무안현감도 왔다.
※ 이순신의 제해권 장악으로 5년간 명은 바다 걱정을 하지 않았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서 참패함으로써 명으로 가는 바닷길이 뚫려버리자 그때서야 위기를 느낀 명은 진린 도독과 계금등에게 5000명과 3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향하게 한다. 그들은 이순신이 바다를 지켜준 덕분에 그들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점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유년(1597년) 12월
칠천량 패전으로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가 명량승첩으로 군세를 다시 회복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많이 부족했다. 고하도에는 그때도 눈이 많이 내렸나 보다. 고하도의 이순신은 눈보라와 강추위를 견뎌내면서 한편으론 새 진지 구축과 수군 재건에 심혈을 기울이고, 다른 한편으론 군기확립에도 전력을 다한다.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전투에 대비해서다.
12월1일[1월7일]
맑고 온화했다. 아침에 경상수사 입부 이순신 (李純信)이 진영에 왔다.(배설이 도망 가 빈 자리에 입부 이순신이 기용되었다) 나는 배가 아파 늦게야 수사를 만났다. 함께 이야기하며 온종일 방책을 논의했다.
12월2일[1월8일] 맑음.
날씨가 매우 따뜻하여 봄날과 같다. 영암의 향병장(鄕兵將) 유장춘이 적을 토벌한 경위를 보고하지 않았기에 곤장 50대를 쳤다. 전 흥산현감 윤영현 김종려 백진남 정수 등이 보러 왔다. 밤 10시경 땀에 젖었다. 북풍이 크게 불었다.
12월3일[1월9일]
맑으나 바람이 크게 불렀다. 몸이 불편하였다. 경상수사(이순신)가 와서 만났다.
12월4일[1월10일] 맑음.
매우 추웠다. 늦게 김윤명(金允明)에게 곤장 40대를 쳤다. 장흥의 교생(校生) 기업이 군량을 훔쳐 실었기에 곤장 30대를 쳤다. 거제현령(안위) 및 금갑도만호(이정표)와 천성보만호가 타작하는 곳에서 돌아왔다. 무안현감과 전희광 등이 돌아갔다.
12월5일[1월11일] 맑음.
아침에 군공을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 상으로 내린 직첩을 나누어 주었다. 김돌손이 봉학을 데리고 함평으로 갔다. 정응남은 점세를 데리고 진도로 나갔다. 포작들을 찾아 모으고 동시에 새로 만든 배를 검사하기 위해서다. 해남의 독동을 처형했다. 전 익산군수 고종후가 왔고, 김억창, 광주의 박자, 무안의 나씨도 왔다. 도원수의 군관이 유지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에 선전관을 통해 들으니, 통제사가 아직도 상제의 예법만 지키고 방편을 쫓지 않아서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개인 사정이 비록 간절하긴 하나 나라 일이 한창 다급하다. 옛사람의 말에도 ‘전쟁에 나가 용맹이 없으면 효가 아니다’ 고 하였다. 전쟁에 나가 용맹한 것은 소찬(素饌)을 하여 기력이 곤핍한 자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법에도 원칙을 지키는 경(經)이 있고 방편을 취하는 권(權)이 있어 꼭 원칙만을 고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卿)은 내 뜻을 깊이 깨닫고 육식도 하며 방편을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유지(有旨)와 함께 고기 음식을 하사하셨으니 더욱 더 마음이 비통하였다. 해남의 강간·약탈한 죄인들을 함평현감(손경지)이 자세히 조사했다.
12월6일[1월12일]
나덕준과 정대청의 아우 응청이 보러 왔다.
12월7일[1월13일] 맑음.
12월8일[1월14일] 맑음.
12월9일[1월15일] 맑음.
종 목년이 들어왔다.
12월10일[1월16일] 맑음.
조카 해, 아들 열 및 진원현감과 윤간(尹侃), 이언량(李彦良)이 들어왔다. 배 만드는 곳에 나가 앉아 감독했다.
12월11일[1월17일] 맑음.
경상수사(李純信)와 조방장(배흥립)이 와서 만났다. 우수사(김억추)도 왔다.
12월12일[1월18일] 맑음.
12월13일[1월19일]
가끔 눈이 내렸다.
12월14일[1월20일] 맑음.
12월15일[1월21일] 맑음.
12월16일[1월22일]
맑다가 늦게 눈이 왔다.
12월17일[1월23일]
눈과 바람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조카 해와 작별했다.
12월18일[1월24일]
눈이 내렸다. 조카 해는 어제의 술이 채 깨지도 못한 채 새벽에 배를 타고 떠났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12월19일[1월25일]
종일 눈이 내렸다.
12월20일[1월26일]
진원현감의 모친과 윤간(尹侃)이 올라갔다. 이몽구 후임으로 온 우후가 교서에 숙배했다.
12월21일[1월27일]
눈이 내렸다. 아침에 전 홍산현감(윤영현)이 목포에서 와서 만났다. 늦게 배 조방장과 경상수사가 왔다가 크게 취하여 돌아갔다
12월22일[1월28일]
비와 눈이 섞여 내렸다. 함평현감이 들어왔다.
12월23일[1월29일]
눈이 3치(약10㎝)나 왔다. 전라도 순찰사(황신)가 진영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미리 왔다.
12월24일[1월30일]
눈이 오다 개다 했다. 아침에 이종호를 순찰사에게 보내 문안했다. 이날 밤 나덕명이 와서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가 머무르는 것을 내가 싫어하는 줄도 모르니 한심한 사람이다. 밤10시경에 집에 보낼 편지를 썼다.
12월25일[1월31일]
눈이 내렸다. 아침에 열이 돌아갔는데 제 어미의 병 때문이다. 늦게 경상수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만났다. 오후 6시경에 순찰사가 진중에 이르렀다. 그와 함께 군사의 일을 논의하였는데, 연해안의 19개 고을은 수군에 전속시키기로 하였다. 저녁에는 방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12월26일[2월1일]
눈이 내렸다. 방백(순찰사 황신)과 함께 방에 앉아서 군사 계책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 했다. 늦게 경상수사와 배 조방장이 보러 왔다.
12월27일[2월2일]
눈이 내렸다. 아침 식사후에 순찰사(황신)가 돌아갔다.
12월28일[2월3일] 맑음.
경상수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만났다. 비로소 경상수사를 지원할 물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이하 마멸됨)
12월 29일[2월4일] 맑음.
김인수를 놓아 주었다. 윤○○에게 곤장 30대를 치고서 놓아 주었다. 영암의 좌수(座首)는 문초를 받고(…) 놓아 주었다. 저녁에 중 두우(杜宇)가 종이 백지와 상지(常紙)등 모두 50(…)을 가져왔다. 오후 8시경에 5명이 뱃머리에 왔다고 하기에 향노(鄕奴)를 보냈다. (…)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거제현령(안위)의 망령됨을 알 수 있다. …가 끓는 물에 의해 팔과 손가락을 다쳤다고 한다.
12월30일[2월5일]
입춘(立春)이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추위가 몹시 심했다. 배 조방장이 와서 만나고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만났다. 평산포만호와 영등포만호는 오지 않았다. 부찰사(한효순)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오늘 밤은 해가 바뀌는 그믐밤이라 비통한 마음이 더욱 심하였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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