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그려서 더 아름답다’ 디지털아트 선구자 베라 몰나展

하송이 기자 2024. 8. 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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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예술.

좁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미술로 볼 수 있겠다.

수학적 정확성, 인간이 갖기 어려운 정교함으로 무장한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붓을 내려놓고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을 독학하는 데 이른다.

베라 몰라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컴퓨터가 완성해 내놓은 수백 수천 장 프린팅 중 극히 일부를 '작품'으로 골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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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어컴퍼니 내달 14일까지

수학과 예술. 좁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미술로 볼 수 있겠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두 분야의 교차점이 있다면 대체 어떤 모습일까.

베라 몰나의 1976년 작 ‘(Des) Orders’. 어컴퍼니 제공


헝가리 출신 작가 베라 몰나(1924~2023)는 컴퓨터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생소했던 1950년대 말 처음 프로그래밍과 대면했다. 수학적 정확성, 인간이 갖기 어려운 정교함으로 무장한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붓을 내려놓고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을 독학하는 데 이른다.

프로그램에 입력한 명령어에 따라 컴퓨터가 만들어낸 기하학적 문양을 프린트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이 같은 작업 방식은 1976년 남편과 함께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꽃을 피운다. 2016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나를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했을 만큼 컴퓨터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컴퓨터가 ‘그려낸’ 그의 작품에선 네모와 선이 만든 기하학적 도형이 주인공이다. 기계를 거친 그의 작업은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복잡한 추상을 구현해 내는 데 이른다. 초기에는 검은 선으로만 이루어졌던 작품은 1970·80년대를 넘어서며 색을 입고 때로 선이 아닌 면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컴퓨터 프린팅 기술과 맞닿아있다.

‘컴퓨터가 그린 그림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베라 몰라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컴퓨터가 완성해 내놓은 수백 수천 장 프린팅 중 극히 일부를 ‘작품’으로 골라냈다. 어떤 작품은 프린팅의 극히 일부만 잘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예술 지향점을 드러냈다. 많은 작가에게 붓이 예술세계를 드러내는 도구이듯, 베라 몰나에게 컴퓨터는 정체성을 구현하는 도구다. 컴퓨터 프린팅 기술이 발달할수록 컴퓨터가 만들어낸 프린팅과 사람이 펜 또는 붓으로 그린 그림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시도는 ‘컴퓨터=일상’이 되는 시기로 넘어오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81세였던 2005년 디지털 아트 분야에서 주목받는 디벨로프 아트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등지에서 소장하고 있다. 베라 몰나가 100세를 앞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이후 작품을 대거 소장하게된 퐁피두센터는 이달 말까지 개인전을 열고 있다.

오는 9월 1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어컴퍼니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아시아에서 처음 그의 작품을 집중해 보여주는 자리다. 10일까지 이어지는 첫 번째 전시에서는 1950년대 후반 연필 드로잉부터 플로터 프린터 드로잉, 이를 바탕으로 한 페인팅 등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 30여 점이 선보인다. 14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전시에서는 뒤러 모네 등 대가의 작품을 베라 몰나가 오마주한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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