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대전 시민 입맛 사로잡은 北 실향민들의 '시원한 손맛'
메밀 주재료 평양냉면집 많이 생겨
담백한 맛에서 자극적 맛으로 변해
4대 이어 100년 넘게 장사하는 곳도
대전 사람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대전은 냉면집이 은근히 많은 도시이다. 그것도 맛있는 평양냉면집이 유달리 많다. 역사가 오래된 원도심 동구와 중구는 물론 웬만한 지역마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쏠쏠한 냉면집이 한두 곳은 꼭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대전에 이북 출신 실향민이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전은 한국전쟁으로 대대적인 인적 재편이 이뤄졌다. 경부선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북한 출신도 적지 않게 내려왔다. 국군과 유엔군이 이기면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밀리면 피란지인 부산으로 내려가기 편했기 때문이다.
□ 메밀 주재료인 평양냉면 주류, 함흥냉면은 드물어
현재 대전인구 144만 명 중에 이북 출신 실향민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세대(80세 이상)가 5만-7만명, 2세대까지 더하면 16만명 정도라고 한다.
김현식 이북5도위원회 대전사무소장은 "한국전쟁 직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북한에서 피란온 수많은 사람들이 귀향하지 못하고 대전에 정착했다."며 "대부분이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일부는 식당도 했다."고 밝혔다.
이북 상인들은 대전 중앙시장의 상권을 장악하고 중부권 최대 시장으로 키워냈다. 50-60년대 농업이 전부이던 시절 피란을 내려온 이북사람들에게 논밭이 있을 리 없고, 부득이 장사와 요식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질이 부지런하고 드센 덕분에 대부분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성심당을 세운 임길순이 함남 함주, 동방산업과 혜천대를 설립한 이병익이 평북 선천, 대전교통을 창업한 김희동이 평남 평원 출신이다.
대전의 냉면 맛집은 대개 한국전쟁과 끈이 닿는다. 전쟁 직후부터 오래 냉면집을 해온 곳도 있고, 이북 출신 부모의 손맛을 배워 창업한 식당도 있다.
대전의 냉면집은 대부분 평양식으로, 함흥식 냉면은 드물다. 대전에 정착한 피란민이 동북쪽의 함경도보다는 서쪽의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재료와 육수, 고명이 차이가 있다.
우선 면을 만드는데 '평양'은 메밀가루를 주재료이며, 점성을 높이기 위해 밀가루나 전분을 섞어 면을 뽑는다. '함흥'은 산간지역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전분을 사용했고, 요즘 남한의 함흥냉면은 고구마전분을 많이 쓴다. 재료의 차이 때문에 평양냉면은 면발이 굵고 잘 잘라지며 씹으면 구수한 맛이 난다. 함흥냉면은 면발이 가늘고 고무줄처럼 질긴 게 특징이다.
먹는 방식과 고명도 다르다. 애초에 평양냉면은 메밀로 만든 면을 동치미에 말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동치미와 고기(소·닭·꿩) 육수를 적당하게 섞거나, 고기육수만 사용하는 곳도 있다. 고명도 평양은 닭고기나 소고기 편육, 무김치 등이 올라온다, 이것들을 말아 먹는 '물냉면'이 평양냉면의 진수이다. 이와 달리 함흥냉면은 물냉면보다 '비빔냉면'이 주류다. 전분으로 만든 면 위에 육질이 단단한 명태나 홍어·가자미 회, 고추장 양념이 올라온다. 함흥냉면은 이러한 재료를 섞어 비벼먹는 비빔냉면이 대표적이다.
□ 슴슴 담백 닝닝→쎄고 달고 자극적인 맛으로
북한의 냉면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슴슴하고 담백하고 닝닝했던 맛이 쎄고 달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했다. 냉면에 겨자와 식초, 고춧가루를 넣어 먹는 사람도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동네마다 식재료가 다르고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냉면이 등장한 것이다. 평양과 함흥의 중간 스타일의 면도 등장했고, 칡가루를 섞은 칡냉면도 나왔다.
고명으로 계란지단과 삶은 계란, 부침두부, 오이채, 육전도 올라온다. 공장에서 뽑아낸 면과 육수도 등장했다. 고깃집 후식 냉면은 십중팔구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면과 육수를 사용한 것들이다.
대전의 유명 냉면집 중에는 이북 출신 실향민의 후손이 대를 이어 장사하는 곳이 꽤 많다.
유성구 신성동의 숯골원냉면은 평양-대전에서 4대 100년 넘게 평양냉면의 전통을 이어왔다. 1대 박재록이 평양에서 모란봉냉면을 개업했고, 2대 박내섭이 가업을 계승했다. 3대 박근성이 1954년 대전으로 피란을 와서 숯골(대덕구 탄동)에 숯골원냉면이란 상호로 가게를 연 뒤, 1991년 신성동으로 확장 이전, 현재는 4대 박영홍 윤선 부부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집 냉면은 메밀이 많이 들어간 면에 닭고기 육수, 고명은 절인무와 지단, 오이채가 얹혀져 나온다. 슴슴하고 깔끔한 맛으로 평양냉면의 원형을 잘 간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성구 봉산동의 진남포도 평양냉면집이다. 진남포는 대동강 하구에 있는 도시로 평양과 인접해있다. 1.4후퇴 때 대전으로 피란온 이정모가 1954년 대전역 앞에 대동면옥이라는 식당을 시작했고, 둘째 아들 이관식이 현재의 장소로 옮기고 상호를 진남포로 바꿔 2대 70년째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메밀과 전분을 섞어 만든 평양식 면에 소고기국물과 동치미를 1:1로 섞은 육수를 내놓는다. 고집스럽게 평양스타일을 지키고 있으며, 맛을 유지하기 위해 1일 150인분만 판매한다.
동구 비룡동의 원미면옥도 오랜 역사를 간직한 냉면 맛집이다. 황해도 곡산 출신 이정삼이 피란을 내려와 1953년부터 대전역 앞 중구 원동에서 냉면집을 시작했고, 중앙시장에서 40년간 장사를 했다. 2003년 비룡동으로 옮겨 2대 이승호를 거쳐, 현재는 손녀인 이창주가 3대째 영업을 하고 있다. 깔끔하고 시원한 닭고기 육수에 잘게 찢은 닭고기와 지단, 삶은 계란, 오이채를 고명으로 얹혀준다. 메밀면을 삶은 면수를 제공한다.
□ 숯골원냉면, 진남포, 원미면옥 등 오랜 맛 자랑
중구 대흥동의 사리원면옥도 1950년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김봉득 일가가 피란을 와서 1951년 장사를 시작했고 1952년에 공식 허가(대전시 음식업 1호)를 받은 식당이다.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서구 둔산동에도 동일한 상호의 냉면집이 있다. 이곳 물냉면은 평양식 메밀냉면에 양지, 사태를 우려낸 고기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육수가 담겨 나온다. 고명은 소고기 육편과 삶은 계란, 배, 오이채, 절인 무로 돼 있다.
함흥냉면을 파는 곳도 있다.
대들보 함흥면옥은 1956년 함흥 출신의 조병선 여사가 중구 은행동에서 불고기·냉면집을 시작했고, 현재는 중구 유천동으로 옮겨 3대인 김종훈 김재숙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대전 만년동의 수라면옥도 함흥냉면으로 이름이 높다. 1986년 중구 대흥동에서 문을 열었고 지금은 만년동으로 이전, 3대째 영업을 하고 있다.
진주냉면을 대전에 전파한 서구 괴정동의 진주냉면이설옥도 새로운 맛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을균 대표가 2016년 중구 문창동에서 창업, 크게 성공을 거뒀고, 세종과 청주 등 6곳에 분점을 뒀다.
서구 도마동 한마음면옥과 평양옥, 원내동 한마음냉면, 동구 중앙시장의 흥미냉면, 판암동의 판암면옥과 대전밀면, 중구 대흥동의 복지면옥과 산성동의 청석골칡냉면, 대덕구 오정동의 황해면옥, 신탄진의 진주냉면이가원 등은 지역민이 즐겨 찾는 맛집들이다.
냉면이 진화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계속 고수하는 곳도 있고, 세태에 맞춰 변화하는 식당도 있다. 50년 100년 뒤 대전의 냉면이 어떤 맛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기차 화재 또"… 아산 모종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화재 - 대전일보
- 세종 싱싱장터 '4호 소담점' 내년 초 개장…집현동에 '수산물유통센터' 건립 검토 - 대전일보
- [영상] "무인카페서 534만 원 어치 공짜로"… 간큰 대전 고등학생들 - 대전일보
- 대전 아파트 공사장 근로자 1명 토사 매몰…사망한 채 발견 - 대전일보
- 오늘 '금융시장·은행' 1시간 늦게 개장…지연 이유는 - 대전일보
- 이재명 "법정 향하는 아내, 죽을만큼 미안… 희생제물 됐다" - 대전일보
- 이준석 "출연료 3000만 원? 대표가 당협행사에 돈을 왜 받나" - 대전일보
- 與, '김여사 특검법' 본회의 표결 불참 결정 - 대전일보
- 아산 음식점 화재 벌써 지난해 2배…"대형화재 우려 후드·덕트 각별 주의" - 대전일보
- KT충남충북광역본부, 청남대에 AI 로봇 도입 확대 - 대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