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교육감 "스스로 판단할 힘 기르게 양극단 생각 다 들려줘야"

강영연/이혜인 2024. 8. 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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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교육계를 각각 대표하는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임태희 경기교육감이 우리 교육이 갈 길을 함께 모색했다.

두 교육감은 대한민국 520만 초·중·고생의 40%를 책임지는 양대 교육청의 수장이다.

두 교육감은 공교육 위기는 대학입시와 평준화된 교육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두 교육감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는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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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조희연·경기 임태희
진보·보수 교육감 만났다
임태희 경기교육감
"학생토론 이끄는 교사들
정치 관점 강요해선 안돼"
공교육 재건 첫발은 '대입 개혁'
AI시대 '평가방식 전환' 강조
교육교부금 축소는 '섣부른 판단'
조희연 서울교육감(오른쪽)과 임태희 경기교육감이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대담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조 교육감은 “수월성 교육과 평등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진보 진영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육감은 “한국 대학의 재정 위기는 등록금 동결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은구 기자


진보, 보수 교육계를 각각 대표하는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임태희 경기교육감이 우리 교육이 갈 길을 함께 모색했다. 두 교육감은 대한민국 520만 초·중·고생의 40%를 책임지는 양대 교육청의 수장이다. 공교육의 위기, 평준화의 문제점, 대학입시 개혁의 필요성 등을 논의하는 대담에서 두 사람이 가장 많이 거론한 말은 ‘진보, 보수를 떠나서’였다. 이들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6월 체결한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따른 토론 교육을 오는 2학기부터 전격 시행하기로 의기투합한 배경이다. 국회의원, 대통령실 실장, 국립한경대 총장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임 교육감과 사회학자 출신으로 10년째 서울교육감을 맡고 있는 조 교육감의 교육현안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들어봤다.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대담은 공교육이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한 논의로 시작됐다. 두 교육감은 공교육 위기는 대학입시와 평준화된 교육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해결 방안은 달랐다. 조 교육감은 대학 서열화를 깨야 한다고 했고, 임 교육감은 대학과 기업의 선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희 교육감=우리 공교육이 지금 같은 위기에 빠진 것은 대학입시 때문이라고 봅니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대졸자만, 그것도 대학을 줄 세워서 선발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조희연 교육감=초·중등 교육 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도 그 뒤에 있는 대학 서열화에 따른 입시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초·중등 교육 개혁은 대학 개혁, 사회 개혁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임 교육감=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를 확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정시에서 얻을 수 있는 공정은 결국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죠. 이는 교육 여건이 좋은 수도권에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학총장으로 일하며 보니 수시로 들어온 학생과 정시로 들어온 학생 중 수시로 선발한 경우가 더 자기주도적이고 학업에 열심이었습니다.

▷조 교육감=정부에서는 교육발전특구 등을 조성해 각 지역에 갈 만한 일류학교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대학 체제 자체에 수정이 필요합니다. 대학 서열화를 개혁하는 방식으로요. 공동입학제도, 공동학위제도 등으로 서열화에 균열을 낸다면 과잉 경쟁이 조금은 완화되지 않을까요.

▷임 교육감=글쎄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지 않은 제도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공교육을 망가트린 평준화 교육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해서 남다른 성과를 내고 차별화하고 싶은데, 다 같이 한다면 누가 열심히 하겠습니까.

조 교육감은 과거식 평준화가 아닌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진보 교육계에 ‘시야를 넓혀야 한다’며 변화를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임 교육감=평준화는 사교육 과열을 불러온 요인이기도 합니다. 공교육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특별한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됐죠.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과거 공교육이 평준화되지 않았을 때는 지방에 명문대가 있었습니다. 그 대학을 나와도 직업을 얻고, 생활하는 데 충분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인서울 대학’이 각광을 받습니다. 결국 사교육 환경이 좋은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강화했습니다.

▷조 교육감=공감합니다. 10년을 교육감으로 일해보니 소위 보수에서 말하는 수월성과 진보가 주장하는 평등교육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진보는 기본적으로 평등교육을 지향하죠. 모든 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평등교육의 기조 위에서 수월성과 다양성이 존중돼야 합니다. 서울만 해도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하는 학생부터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까지 다양합니다. 진보도 시야가 넓어져야 합니다.

▷임 교육감=사실 평등교육은 진보의 이념만도 아닙니다. 시작은 보수정부에서 했으니까요. 보편적으로 누구나 교육받아야 한다는 것이 평등교육으로 바뀌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유주의를 택하고 있는 유럽 같은 곳을 보면 개인이 다 다른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개발시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등교육이란 이름 아래 모든 학생을 규격 안에 넣어 키웠죠.

▷조 교육감=맞습니다. 대량 생산 교육으로 인공지능(AI) 시대 인재를 키울 수가 없죠. 다행히 기술 개발과 함께 개별 학생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양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을 표준화하고, 그것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는 방식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임 교육감=다양한 교육은 사교육비 경감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학교 안에서 해야만 공교육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는 공유학교로 늘봄학교를 운영합니다. 기존 학교는 기본 인성교육과 기초학력을 갖추는 교육을 하고, 공유학교에서 예체능부터 심화학습 등을 하는 겁니다.

두 교육감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는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육감=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틀에 맞춰진 교육으로는 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워줄 수 없습니다.

▷조 교육감=디지털 AI 시대, 기술혁명 시대입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질문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가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죠. 지금은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객관식으로 시험을 보고 평가하지만 앞으로 논·서술형 평가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임 교육감=공정성이라는 것이 꼭 사지선다에서만 담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을 핑계로 평가 방식을 너무 쉽게 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조 교육감=공감합니다.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도 그래서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합니다. 한 번의 시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심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논술 수업 등을 통해 아이들의 비판적인 사고력을 증진할 수 있습니다. IB는 공교육 강화를 위해 필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임 교육감=IB 등을 도입하면 평가가 공정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비슷하게 평가합니다. 앞으로는 정답 맞히기, 지식 쌓기가 아니라 사고력, 문제 해결 역량 등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 6월 협약을 맺은 서울과 경기교육청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이날 대담에서 나왔다. 일선 학교 현장이 특정 진영 논리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고 학생들에게 균형감 있는 사고역량을 키워주자는 것이다.

▷임 교육감=미래지향적 숙의형 토론 교육을 위해 중요한 것은 세 가지라고 봅니다. 먼저 학생에게 세뇌하듯 생각을 주입해서는 안 됩니다. 또 한쪽의 시각만이 아니라 양쪽의 극단적인 생각을 모두 소개해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조 교육감=공감합니다. 특히 토론 진행자인 교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보에서는 단선적으로 보고, 정의적 관점에서 옳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중립성을 지키고 양쪽의 시각을 모두 보여줘야 합니다.

▷임 교육감=극단적인 의견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합리와 상식선에서 토론하면 서로 접점이 생길 겁니다.

▷조 교육감=그동안에는 정치적 진영 논리로 인해 금기시된 주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주제라도 토론해야 합니다. 양 입장을 충분히 알게 되면 극단적인 의견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학생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관련해 토론한다면 이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서울시의원 발언과 그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의견을 모두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판단하는 대법원 판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을 시켜보는 거죠.

교육재정교부금 축소 또는 일부를 대학 등 고등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조 교육감보다 임 교육감이 더 엄격한 입장을 보였다.

▷조 교육감=학생 수가 감소하니까 교육재정교부금이 남아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세수가 줄어들면서 지난해부터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예산을 부서별로 30% 정도 감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안정성이 부족하고 진폭이 큰 재원이기 때문에 단순히 줄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임 교육감=경기도는 학령인구가 줄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과거와 달리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어린이집과 유치원 통합에도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립 어린이집을 국공립 유치원 수준으로 올려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조 교육감=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던 어린이집 보육예산은 쉽게 이관되겠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칭으로 진행하던 사업 예산은 교육청으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디지털 AI 교육까지 생각하면 교육 재정이 남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면 교육재정교부금의 고등교육 활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임 교육감=한국 대학들의 재정 문제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학 진학률, 사립 대학 비중 등이 너무 높고, 대학 등록금을 그간 동결해온 것이 원인입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등록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원인을 내버려두고 다른 곳에서 충당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보이텔스바흐 협약

보수 진보 간 정치적 대립이 깊던 1976년 서독에서 양 진영의 정치인과 지식인이 학생을 선입견 없는 시민으로 양성하기 위해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합의한 토론식 교육 협약. 특정 정치적 의견 주입 금지 등을 통한 학생들의 균형적, 합리적 사고능력 배양이 목표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세 가지 원칙은 △주입식 교화 교육 금지 △균형 있는 토론을 위해 양극단의 의견을 모두 제시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교육 등이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1975년 서울 중앙고 졸업
△1980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83년 연세대 사회학 석사
△1992년 연세대 사회학 박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집행위원장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제20, 21대 서울교육감
△제9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 국가교육위원회 비상임위원
△제22대 서울교육감

■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1956년 경기 성남 출생
△1975년 경동고 졸업
△198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4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2012년 영산대 경영학 명예박사
△1980년 24회 행정고시 합격
△제16, 17, 18대 국회의원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실 실장
△제7대 국립한경대 총장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
△제18대 경기교육감

강영연/이혜인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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