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벌써 전기차 사서 고생”…속썩이지 않은 ‘국산차값’ 일본車, 도발 통했다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4. 8. 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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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선발주자 테슬라·벤츠 등
안전문제 드러나자 소비자 불안
일본 하이브리드카 ‘기사회생’
내구성에 합리적 가격으로 인기
테슬라 때문에 울고 웃은 일본차 [사진출처=렉서스, 테슬라]
참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따로 없습니다. 국내 판매되는 일본차에 딱 맞는 표현입니다.

경기 불황으로 자동차 판매도 위축되면서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일본차만은 뒤에서 웃고 있습니다. 다들 웃을 때 몰래 울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판매실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2023~2024년 수입차 판매현황을 분석해봤습니다.

독일차는 울고, 일본차는 웃고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인기많은 BMW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 [사진출처=BMW, 벤츠]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27만1034대였습니다. 전년보다 4.4% 감소했죠.

국내 수입차 시장을 주도하는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독일차 판매대수가 5.9% 줄어든 영향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차는 2만3441대로 전년의 1만6991대보다 38% 증가했습니다. 토요타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가 가장 많이 판매됐습니다.

렉서스 판매대수는 1만3561대로 집계됐습니다. 전년의 7592대보다 78.6% 급증했습니다. BMW, 벤츠, 아우디, 볼보에 이어 수입차 판매순위 5위를 기록했죠. 국내 진출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차 불매운동이 벌어졌던 2019년 이후 4년 만에 연간 판매대수 1만대도 넘어섰습니다.

토요타는 8495대로 전년의 6259대보다 35.7% 판매가 늘었습니다. 수입차 판매순위는 9위로 집계됐습니다.

단, 지난 2008년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1만대를 돌파했던 혼다는 1385대에 그쳤습니다. 신차 부족으로 고전하면서 전년의 3140대보다 55.9% 감소했습니다.

일본차가 가장 많이 판매된 전성기는 2018년. 렉서스는 1만3340대, 토요타는 1만6774대 각각 판매됐습니다. 두 브랜드 판매대수만 3만대 이상이었죠.

올해 판매대수가 급증한 혼다 어코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올해도 수입차 시장은 침체에 빠졌지만 일본차는 예외였습니다. 지난해보다 성장세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입차 판매대수(미국차 테슬라 제외)는 10만8272대로 집계됐습니다. 전년동기의 13만689대보다 17.2% 감소했죠.

독일차는 전년동기보다 판매대수가 18.8% 줄었습니다. 수입차 판매 1위인 BMW가 전년동기보다 7.8%, 2위인 벤츠는 15.3% 각각 감소한 게 타격을 줬습니다.

아우디는 62.6%, 포르쉐는 42.8% 각각 줄었습니다. BMW·벤츠·아우디 대항마로 꼽힌 스웨덴 출신 브랜드 볼보도 15.1% 판매대수가 감소했습니다.

일본차만은 판매가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판매대수는 1만2197대로 전년동기의 1만1501대보다 6.1% 증가했습니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도 8.8%에서 9.7%로 증가했습니다. 올해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1대가 일본차라는 뜻입니다.

지난해 부진했던 혼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습니다. 판매대수는 1241대로 전년동기의 573대보다 116.6% 급증했습니다.

토요타 판매대수는 지난해 상반기 3978대보다 14% 늘어난 4535대로 집계됐습니다.

일본차 대장주인 렉서스의 판매대수는 7.6% 감소했습니다. 전년동기와 비교하면 529대 적게 판매됐죠.

벤츠가 5412대, BMW가 2976대, 아우디가 6033대, 포르쉐가 2663대 적게 팔린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선방한 셈입니다.

2019년부터 “일본차 망했다” 전망 나와
일본차 리더인 렉서스 ES [사진출처=렉서스]
일본차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국산차값’ 가성비(가격대비성능)로 수입차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독일차보다 더 많이 판매됐죠.

2009년 8월 미국에서 렉서스·토요타 결함 악재가 터졌습니다. 국내에서도 품질에 대한 신뢰가 분노로 돌변했고 대규모 리콜이 시작됐습니다.

결함 논란 직격탄을 맞은 렉서스 ES의 국내 판매대수는 급감했습니다. 2009년 수입차 2위에서 2010년 8위, 2011년 11위, 2012년 23위로 급락했죠.

렉서스는 결함 논란에서 5년간 헤어나지 못하다가 2014년부터 신뢰가 점차 회복되면서 판매대수도 증가했습니다. 2016~2019년에는 다시 2~3위 자리를 유지했죠.

렉서스 ES는 서울 강남에서는 현대차 쏘나타보다 많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강남 쏘나타’에 어울리는 판매대수를 기록했습니다.

렉서스 ES, 토요타 캠리와 라브4, 혼다 어코드와 CR-V를 앞세운 일본차는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독일차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본차를 위기에 빠뜨린 테슬라 모델3 [사진출처=테슬라]
가장 큰 위기는 지난 2019년부터 연달아 찾아왔습니다. “일본차 이제는 진짜 망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글로벌 산업 핏줄을 무시한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도발이었습니다.

아베 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한국인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노재팬)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일본 제품 중 가장 비싼 자동차도 타깃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죠.

실제로 토요타(렉서스 포함), 혼다와 함께 일본차 삼각편대를 형성했던 닛산(인피니티 포함)이 2020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불매운동 이전에도 철수 분위기는 감지됐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 일본차 브랜드 중 상대적으로 부족한 제품 경쟁력 등 닛산 자체 위기 때문이죠.

물론 불매운동이 닛산 철수의 마중물은 아니지만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 역할은 했습니다.

토요타 라브4 하이브리드 [사진출처=토요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하이브리드(HEV)로 친환경 시장 파이를 키우고 있던 일본차에는 ‘저승사자’처럼 여겨졌습니다.

테슬라 모델3는 서서히 다가오던 전기차(EV) 시대를 급속도로 앞당겼습니다.

돌풍을 넘어 태풍으로 위력을 키운 모델3에 자극받아 벤츠, BMW, 아우디, 볼보, 포르쉐,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폴스타, 폭스바겐, MINI 등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앞 다퉈 진출했습니다.

테슬라가 일으킨 전기차 붐은 완전한 전기차 시대가 올 때까지 가솔린·디젤차와 전기차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여겨졌던 하이브리드카를 한물 간 친환경차로 만들었습니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일본차 불매운동이 거셌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만대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테슬라가 일으킨 전기차 열풍도 하이브리드카에 집중한 일본차에는 악재였습니다.

인기비결, 하이브리드·내구성·가성비
토요타 캠리 [사진출처=토요타]
서둘러 먹으면 체한다고 하죠.

전기차 초기 수요가 충족되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충전 고통, 화재 걱정 등으로 ‘사면 고생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전기차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덫에 빠져서 헤매고 있는 동안 퇴물 취급받던 하이브리드카가 다시 친환경차 대세가 됐습니다. 하이브리드카 리더인 일본차도 다시 웃게 된 셈이죠.

일본차 판매 증가는 하이브리드카 덕분이지만 품질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습니다.

자동차의 적은 시간입니다. 탈수록 탈나기 마련입니다. 차량 품질과 애프터서비스 품질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뒤에도 고장이 잘 나거나 유지비가 많이 드는 수입차는 운전자에게 스트레스 그 자체입니다.

중고차로 팔 때도 가치가 국산차보다 더 많이 떨어집니다. 손해를 보게 되죠.

일본차는 내구성이 우수해 ‘상대적으로’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하이브리드카는 고장으로 속 썩을 일이 적은데다 연비도 뛰어나죠. 유지비 부담을 덜어줍니다.

우수한 내구성 비결은 혼신을 다해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일본 제조업 전통과 혁신보다는 개선을 중시하는 장인정신의 핵심인 ‘가이센’(改善, KAIZEN)에 있습니다.

모노즈쿠리와 가이센은 변화와 변혁의 시기에는 단점으로 작용해 전기차 전환을 늦추고 편의성 향상을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품질 측면에서는 일본차의 경쟁력을 높여준 장점입니다.

일본차는 오랫동안 타다 보니 지겨워져서 바꾸고 싶지만 핑계거리를 제공하지 않아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말도 있을 정도죠.

토요타 스킬 콘테스트 [사진출처=토요타]
1989년 브랜드 출범한 렉서스가 ‘내구성의 황제’로 불리게 된 비결은 또 있습니다.

토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를 내놓기 전 미국 프리미엄 차량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를 세 분류로 구분했죠.

첫 번째 소비자군은 나이가 많고 보수적이며 캐딜락이나 링컨 등이 내놓는 자국산 차량을 선호했습니다.

두 번째는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비자 군이었죠. 이들은 고성능 이미지와 ‘폼생폼사’를 중시해 독일 프리미엄 차량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세 번째는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는 그룹이었습니다. 차의 신뢰성과 유지보수 측면에서 문제가 없으며 훌륭한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소비자 군이었죠.

렉서스는 세 번째 소비자 군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심리학자와 인류학자를 동원해 이들을 분석한 뒤 내구성과 서비스 품질에 공들였습니다. 노하우가 쌓이면서 ‘내구성 황제’가 됐죠.

위기탈출 일본차, 한국에 없던 차종도 출시
토요타 크라운 [사진출처=토요타]
일본차는 가격 경쟁력도 우수한 편입니다. 국산차 시장 최강자인 현대차·기아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대에 나옵니다.

중고차 가치도 높습니다. 수입차는 국산차보다 중고차 감가가 더 빨리 이뤄지는 데 일본차는 예외입니다.

신차 출고 이후 가격이 절반 수준이 되는 평균 기간을 알아보면 국산차는 5년, 수입차는 4년 정도입니다.

일본차는 국산차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비인기 국산차보다 인기 일본차의 중고차 가치가 더 높게 나오기도 합니다.

위기탈출로 자신감이 붙은 일본차는 현대차·기아가 장악한 국산차 시장을 사정권에 뒀거나 수입차 시장 틈새를 공략할 새로운 차종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습니다.

토요타와 렉서스가 가장 적극적입니다. 세단과 SUV를 결합한 크로스오버인 크라운은 그랜저와 간접 경쟁합니다.

토요타 알파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일본에서 성공하면 타는 차로 알려진 미니밴인 알파드도 내놨습니다. 기아 카니발 하이리무진의 경쟁차종입니다.

BMW·벤츠·제네시스와 경쟁하는 렉서스도 럭셔리 미니밴인 LM을 최근 선보였습니다. 미니밴이지만 럭셔리 세단 뺨치는 품격과 편의성을 앞세워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과 경쟁하는 차종입니다.

물론 일본차가 독일차를 제치고 다시 수입차 시장 주도권을 차지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신 국산차와 수입차 틈새를 공략하거나 정면 대결할 차종으로 현대차·기아, BMW·벤츠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은 일본차 부활에 속상할 수 있을 겁니다. 소비자에게는 이득입니다.

긴장 고조는 차종·서비스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소비자는 넓어진 선택폭과 높아진 서비스 만족도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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