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정부 지원 제안 사실상 ‘거절’
김정은, 러시아에겐 “진정한 벗”
북한 ‘자력갱생’ 연출로 내부결속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압록강 인근 지역 수해로 대규모 사상자가 났다는 남한 언론 보도를 비난하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밝혔다.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제안을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물자 지원 제안에는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자력갱생’을 강조하려는 메시지를 냈다.
김 위원장은 수해 주민을 구조했던 직승비행(헬기)부대를 지난 2일 방문해 부대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지난 3일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지금 적들의 쓰레기언론들은 우리 피해지역의 인명피해가 1000명 또는 1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모략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정부의 복구 물자 지원 제안을 거절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일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북측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해당 채널은 지난해 4월부터 끊겨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지난 1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를 폐지해 공식적인 대응 기구가 없다”면서 “해당 제안을 ‘공식적으로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 대치가 가팔라진 상황에서 북한의 거절은 예상된 답변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2019년 12월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대남·대미 관계의 단절을 선언했고, 지난해 12월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오물풍선과 대북 확성기 방송 갈등, 지난달 한·미가 체결한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 등을 둘러싼 대치 국면도 이어지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물자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물자 지원을 위한 사전 작업을 먼저 진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물자 지원 제안에는 사의를 표했다. 통신 등은 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수해와 관련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신속히 제공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가장 어려울 때 진정한 벗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세워진 계획에 따라 피해 복구 사업이 진척될 것”이라며 “만약 그 과정에 앞으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장 진실한 벗들, 모스크바에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반드시 도움이 필요할 경우’를 전제한 데는 북한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을 연출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4일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피해 복구 작업에 “당원들과 청년들이 열렬히 탄원(자원)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탄원은 1960년대부터 북한이 노동력 동원을 위해 쓰는 방식이다. 외부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국가적으로 굉장히 큰 어려움이 있지만, 김 위원장이 온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향후 러시아의 물자 지원도 최대한 비공개적인 형태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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