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거부권 보장하라"…'디지털 감옥' 탈출구 찾는 지구촌
(10)·끝 속도내는 디지털 규제
아동·청소년, SNS '격리'
국내 '필터 버블 방지법' 발의
"콘텐츠 추천 아닌 시간순 노출"
美·유럽은 SNS 가입 금지시켜
알고리즘 공개 압박도
알고리즘 변경이력 추적 활발
전문 규제기관 통한 공개 논의
"신뢰·공정성 위해 반드시 필요"
추천 알고리즘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자 각국 정부가 앞다퉈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관련 규제의 대부분은 추천 알고리즘 기술을 금지하기보다 미성년자 등 일부 이용자에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설명 가능한 알고리즘’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콘텐츠 추천 대신 시간순으로 배치
4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7일 SNS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보 제공을 제한하는 ‘청소년 필터 버블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필터 버블은 인터넷에서 정보 제공자가 이용자의 취향이나 선호도를 분석한 뒤 맞춤형 정보를 표시해 이용자가 선별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 법은 추천 알고리즘을 활용해 이용자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정보를 ‘중독성 콘텐츠’로 규정한다. 구체적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추천 알고리즘 기반 소셜미디어 서비스 제공자는 미성년자의 가입 여부와 법정대리인 서비스 제공 동의 여부 등을 확인할 의무를 진다.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알고리즘 추천 게시물이 아니라 시간순으로 콘텐츠를 노출하는 게 법의 핵심이다. 야간 등 특정 시간에는 알고리즘 게시물의 알림을 제한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추천 서비스를 제공해 SNS 중독이라는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청소년이 개인 선호에 맞는 콘텐츠에만 노출되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릴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통과됐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30일 아동 온라인 안전법(KOSA)과 어린이 및 10대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법(COPPA2.0)을 통과시켰다. KOSA는 플랫폼 기업이 미성년 사업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값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설정하고, 비슷한 콘텐츠를 자동 재생하는 기능을 끌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COPPA2.0은 데이터 수집을 위해 부모 동의가 필요한 대상을 만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확대하고, 기업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
유럽연합(EU)은 추천 알고리즘을 활용한 플랫폼이 어린이의 행동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5월부터 메타를 대상으로 디지털서비스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3세 미만 영유아의 영상 시청을 막고 13세 미만 어린이의 스마트폰 소지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영국에선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스마트폰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13세 미만 어린이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안하려면 부모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노력도
각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관련 규제 대부분은 SNS 중독성에 취약한 미성년자를 추천 알고리즘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데 방점이 찍혔다. 최근에는 여기서 나아가 설명 가능한 알고리즘을 강제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추천 알고리즘 기술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온라인 서비스 대부분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기술 수준의 차이가 있어도 모든 서비스 깊숙이 추천 알고리즘이 침투했다는 얘기다.
기술이 발전하며 추천 알고리즘은 점점 복잡하게 진화했다. 콘텐츠와 상품을 추천하기까지 많게는 수천 가지의 정보를 활용한다. 딥러닝 같은 인공지능(AI)과도 결합했다. 그렇다 보니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물이 나왔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 빅테크는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된 것일 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방패’로 쓰기도 한다.
최근 들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알고리즘의 변경 이력을 추적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떠올랐다. 다만 알고리즘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는 만큼 누구나 소스 코드를 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대신 전문 규제 기관을 거쳐 공개하는 식이다.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은 “알고리즘 규제는 알고리즘에 의한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신뢰성 확보, 시장 교란 행위 차단 등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반대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이용자에게는 알고리즘 적용 거부권처럼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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