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도심 지하차도 살인사건…사람 없을 때 홀로 일하는 환경미화 ‘유령노동’이 부른 참극
지난 2일 서울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에서 새벽 근무를 하던 서울 중구 용역업체 소속 60대 여성 청소노동자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피해자 A씨는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홀로 근무하다가 피습당했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노동자들의 근무를 ‘2인1조’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4일 경향신문에 ‘인파를 피해 일해야 하는 노동’이 A씨를 비롯한 ‘유령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오전 5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는 오전 7시였더라도 가해자가 흉기를 휘두를 수 있었을까”라며 “지켜보는 이가 적은 시간대라면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위험에 대응하는 게 보다 안전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소 노동은 다수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눈에 띄지 않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유령노동’으로 분류된다. 청소일은 노동자의 출근과 업무가 모두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대에 이뤄진다. A씨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이 벌어진 지하보도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 평일 낮 시간에는 왕래하는 직장인과 행인이 많지만 A씨가 일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주 업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로,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 담당 구역을 깨끗이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대청소 기간이었던 지난 2일 그는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청소에 나섰다가 오전 5시10분쯤 변을 당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A씨는 피습당한 지하보도를 혼자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직후 다른 곳에 있던 환경미화원이 A씨를 발견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며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오전 6시20분쯤 A씨는 숨을 거뒀다.
중구청은 사건 발생 이후 관할 청소노동자들의 구역을 ‘2인1조’로 재편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정수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교육전선실장은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 지 모르는 업무 환경에서 2인1조는 상호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중구청 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도 확대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 대표는 “환경미화는 외부에서 하는 일로서 불특정 다수와의 시비 등 알 수 없는 위험요소에 노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홈리스 활동가들도 취약 시간대 ‘나홀로’ 근무의 위험성을 짚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 활동가는 “오전 4시10분쯤 화장실에 갔던 한 홈리스 당사자에 따르면 그때도 A씨가 혼자 청소 중이었다고 한다”며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혼자 근무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최현숙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 활동가는 “새벽에 상대적으로 (노숙하는) 남성이 많은 지역에 여성 혼자 청소를 담당하게 하는 환경은 구조적으로 위험하다”고 했다.
가해자 B씨는 노숙 경험이 있는 70대 남성으로 구역을 담당해 온 A씨와 지난해 5월부터 알던 사이로 조사됐다. 사건 날짜와 물청소 기간이 겹치면서, 일각에서는 청소노동자와 노숙인 간의 갈등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활동가는 “노숙 자리를 두고 갈등이 생길 여지가 없을 순 없지만,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청소원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라며 “두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상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B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이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B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몰라요”라고 답했다. 법원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이날 B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8041321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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