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도 '돈'···미래엔 재무제표까지 반영될 것”
25년 경제관료->SK싱크탱크 수장 변신
최태원회장 경영철학 반영 2018년 설립
‘사회성과’ 측정후 687억 인센티브 지급도
ESG, 한때 유행 아냐···- 미래 혁신동력
공익 추구 '가보지 않는 길' 소명감
서울 태평로 대한상공회의소 빌딩 8층에는 ‘사회적가치연구원’이라는 독특한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만 독특한 게 아니다. 연구원 입구에 들어서면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힌 커다란 고양이 그림들이 벽면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양이가 쥐를 잡죠. 쥐는 일종의 사회적 문제의 비유입니다. 검은색은 경제적 가치(EV), 흰색은 사회적 가치(SV)를 의미하죠. 기업이 검은색과 흰색, 다시 말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연구원은 이런 시장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는 곳입니다.”
연구원을 이끄는 나석권(58) 대표이사는 “다들 뭐하는 연구소인지 궁금해한다”면서 “이럴 때마다 저와 직원들은 영화 ‘극한직업’ 대사를 패러디해 ‘세상에 이런 연구원은 없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가치를 연구하는 곳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설립한 연구소임에도 ‘돈 버는 일’에는 관심 없고 사회적 가치를 연구하는 곳은 흔하지 않죠.”
사회적가치연구원은 기업들이 보다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태원 SK 회장의 주도로 2018년 설립된 비영리 연구단체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과 복심이 담긴 싱크탱크인 것이다.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 건 2010년대 초반쯤이라고 해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SK그룹을 물려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적대적 인수합볍(M&A) 공격을 받았죠. 선대의 업(業)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한 결과가 지속 가능한 경영이고 그 핵심 키워드가 사회적 가치입니다.” 연구원의 고양이 그림은 최 회장이 쓴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2014년)’이라는 책에 담긴 우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모두 추구해야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나 대표는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재무부)에 입문해 뉴욕 총영사관 재경관 등을 지낸 국제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2017년 공직을 접고 SK경영경제연구소 전무를 거쳐 2019년부터 연구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5년 공직 생활을 끝내고 민간 쪽으로 전직했지만 사회적 가치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이라는 소명 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연구원 명칭에 SK를 붙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SK그룹의 문화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비영리 재단을 운영하는 기본적인 정신과 연결돼 있다”며 “해외 박사과정을 지원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SK를 붙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나 대표는 사회적 가치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의 명언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처럼 화폐단위로 측정해야 기업의 행동을 바꾸고 사회문제 해결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원은 해마다 100억 원가량을 30~50개 사회적 기업에 지원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Social Progress Credit)’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의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실증 실험이다. 나 대표는 “SPC는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며 “정부의 보조금도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되지만 성과를 측정하고 지급하는 SPC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누적 지원금은 689억 원. 참여 기업 412곳이 4648억 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연구원은 평가했다. 연구원은 이런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서울 등 6개 지방자치단체와 업무 제휴를 맺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 제주도의회는 올 6월 아예 SPC 모델(성과 측정 후 보상)을 조례(사회적경제기업 사회성과 측정 및 보상사업에 관한 조례)로 통과시켰다.
그는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도 경제적 가치처럼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무제표는 원래 토지와 건물 등 유형자산을 반영하다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자산을 뒤늦게 반영했습니다. 사회적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누구가 인정할 만한 회계기준을 정해야 하는 과제가 있죠.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회계기준을 만들기 위해 관련 위원회를 설치해 지난해 기준을 마련한 것은 사회적 가치를 재무제표에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인 것이죠. 재무제표화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고 봅니다.”
“사회적 가치를 수반하는 ESG 경영은 한때의 유행이 아닙니다. 기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좌초자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수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통적 화석산업은 미래의 어느 순간 가치가 확 떨어집니다.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제적 가치만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야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혁신 동력을 높일 수 있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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