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 속에 온전히 들어갈때, 좋은 작품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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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소설가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란 걸 말하기 위해 쓰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나의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가로서만 느끼는 고통은 또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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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난파 그린 '끝없는 밤'
죽어가는 남자 손을 잡았던
꿈꾼 후 메모로 집필 시작
내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그들 선택 바라보는 게 소설
그 순간 덕분에 외롭지 않아
큰 상 받아 당연히 기쁘지만
차기작 영향없게 조심해야죠
손보미 소설 '끝없는 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승선한
초호화 요트가 난파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나'가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나'는 Y존이라
불리는 샅굴 부위의 통증을 느끼지만 그 통증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10억원짜리 요트가 가라앉기 전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나'는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들이치는 바닷물 위에서 그 통증의 이유를 알게 된다.
손 작가를 최근 서울 중구 매일경제 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이 궁금하다.
▷올해 상반기에 원고 두 편을 마무리했다. '천생연분'이란 소설은 이번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자선작으로도 실릴 예정이다. 다른 작품 '동전의 양면'도 같은 시기에 발표했다. '끝없는 밤'도 그렇고 두 편 모두 원고지 200매가 넘는 긴 소설이다.
―한국문학장에서 자주 호명됐지만 매번 느낌은 다를 것 같다.
▷일희일비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작품 하나하나에도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을 완성했는데 정말 구제의 여지가 없는 것 같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음, 망쳤지만 괜찮아, 다음에 잘 쓰면 되지 뭐.' 상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문학상 수상은 제 소설에 대한 극적이고도 공식적인 긍정적 반응이기에 기쁘지만 수상이 저의 작업이나 생활에 이런 저런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이 된다. 무감해지려 노력한다.
―수상작 '끝없는 밤'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이 소설의 '처음'이 궁금하다.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다 쓰고 나면 시작점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게 되는 지점이 있다. 다만 이 소설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는 건 보트가 전복되는 내용의 꿈을 꾼 것이었다. 때때로 꿈을 꾸다 새벽에 깨어나면 꿈의 내용을 아이폰 메모장에 급하게 메모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그 메모의 내용을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긴 하다. 꿈속에서 배가 전복됐고 누군가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죽어가는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깨어나서 이 메모를 봤을 때 누구의 손을 잡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전복된 배'란 이미지가 맴돌았다.
―독자로서 '끝없는 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죽은 대상을 영원히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이득을 얻는 건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란 부분이었다. 이 문장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
▷이 소설엔 죽은 강아지가 나온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다'란 표현은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죽은 대상의 행복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속임수 없이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제는 이게 맞는 생각 같다가도 내일은 '아, 그건 틀린 생각이었어'라고 후회한다. 이 생각과 저 생각 사이에서 언제나 오락가락한다. 난 아마 그런 오락가락한 상태 자체를 소설로 쓰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소설가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란 걸 말하기 위해 쓰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레이먼드 카버의 에세이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작가가 반드시 그 지역 일대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카버의 저 말에 100% 동의해왔다. 똑똑한 사람만 뭔가를 쓸 수 있다면 난 못 썼을 것이다. 대단한 통찰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지식이 많지도 않다. 소설로 할 수 있는 건 모르는 것에 대해 문장으로 옮기는 것 정도인 것 같다. 물론 '진실에 가닿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다는 욕망과 진실에 가닿고 싶다는 욕망은 엄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전자는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 자의 욕망이고 후자는 진실을 알 수 없다고 느끼는 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떤 의미 같은 것도 부여하지 말고, 그냥 그들의 말과 행동, 선택을 바라보는 것.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절대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 그게 내게는 중요한 것 같다.
―'끝없는 밤'에 나오는 요트란 공간은 삶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요트는 누군가는 올라타고 싶은 계급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요트나 탈 팔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갖는 복잡한 마음들이 있다. 동시에 요트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불안정한 공간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내 의지에서 멀어지는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 내 삶의 운명, 나를 속박하는 것, 혹은 죽음. 요트는 삶의 세속적인 욕망이 폭발하는 공간인 동시에 운명이나 죽음과 관련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손보미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였고 나처럼 평범한 아이는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문과에 들어간 것도 그냥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뭐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소설을 처음 쓴 것도 아주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대학 내내 소설 학회에서 1년에 한 편 정도 소설을 썼지만 그때도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소설이 재밌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대개는 꽤 심한 혹평을 들었다. 지금은 없어진 '21세기문학'으로 2009년 데뷔하고 나서도 청탁이랄 게 없었다. 능동적으로 아주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한 건 2011년 신춘문예였다. 소설 '담요'였는데 만약 이 작품이 안 되면 소설가로서의 삶은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 자신에게 돌아가 '넌 작가가 될거야!'라고 말해도 과거의 저는 믿지 못할 것 같다.
―소설가로서 느끼는 행복감은 뭘까.
▷하나의 소설을 완성했을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하나의 단계를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임을 할 때 하나의 퀘스트를 깬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소설을 쓰는 동안 느끼는 쾌감 같은 건 있다. 쓰기 전에 아무리 내용을 열심히 구상한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즐거울 때는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장면이나 대사들이 등장할 때다. '끝없는 밤'은 꿈이나 사주를 봤던 경험 등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수의사가 나올지 몰랐고, 강아지가 나올 줄도 몰랐고, 그녀가 디저트 가게에 가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만날 때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행복감'을 물은 이유는 이 질문을 드리고 싶기 때문이었다. 소설가로서만 느끼는 고통은 또 뭘까.
▷소설 쓰는 작업은 너무 외로운 것 같다. 소설을 쓰다가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지 그 모든 걸 혼자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괴로울 때가 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쓸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빈 화면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할 때 말이다. 아침부터 일을 하러 나왔는데 한 글자도 못 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자괴감 같은 것. 그 모든 건 오직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최근 읽는 책은.
▷올해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해 민망한데, 요즘 읽고 있는 건 2018년 문예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로널드 랭의 '분열된 자기: 온전한 정신과 조현병에 대한 연구'란 책이다. 신체의 작동에 좀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소설에서 그런 묘사를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마음과 연결된 신체, 혹은 신체에 연결된 마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마 그런 관심사가 날 이 책으로 이끈 것 같다.
―아끼는 해외 작가를 알려준다면.
▷어렸을 적에는 레이먼드 카버와 헤밍웨이를, 조금 이후에는 존 치버를 좋아했다. 존 치버의 소설에는 기묘한 유머 감각 같은 게 있다. 시니컬하기도 하고. 프란츠 카프카를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좋아하게 됐다. '선고'란 작품을 읽게 됐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어떤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정말로 좋은 점은 내게 충격을 준 작가가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점이다. 안톤 체호프, 도리스 레싱, 윌리엄 트레버, 앨리스 먼로, 그레이엄 그린, 리처드 플래너건, 아고타 크리스토프, 팀 오브라이언…. 이 세상에는 충격적으로 좋은 소설들이 너무 많이 있다.
―흔히들 '골방'이라고 표현한다. 뭔가를 쓰는 순간의 골방, 카페와 같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어떤 내면과 심부의 장소라고 해야 할까. 소설을 쓰는 동안의 그 장소, 골방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난 '골방'에서 쓰는 것 같진 않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정말로 소설이 잘된다고 느낄 때 난 온전히 소설 속에 들어가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려는 참인지 궁금해한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저도 느낄 수 있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다. 항상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볼 수 있을 때, 난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작업이 잘될 때, 난 분명히 그들(내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있다. 혼자 작업을 하는 건 외로운 일이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런 순간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맞이하면 전혀 외롭지 않다.
손보미 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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