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를 그리며 예술적 상상력을 얻다

송인걸 기자 2024. 8. 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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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 한국화전공, 중국서 12해째 사제동행 사생체험
교수들이 병원·기관에 작품 임대해 학생들 경비 지원
학생들 ‘탑 같은 산’ 실경 스케치…생생한 작품 전시 예고
목원대 한국화전공 교수와 학생들이 지난달 중국 태산에서 현장체험 사생활동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목원대 제공

“교수님과 같이 태산(타이산)을 드로잉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태산을 왜 선경이라고 하는지 알게 됐어요.”

1일 엄민화(25·목원대 한국화전공 4년)씨는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사제동행 해외미술문화체험’에 참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대전 목원대 미술·디자인대학 미술학부 한국화전공 학생 등 18명과 교수 등 모두 24명은 지난달 11일부터 16일까지 5박6일 동안 중국 산둥성의 지난, 타이안, 취푸, 칭다오 등에서 ‘사제동행 해외미술문화체험’을 했다. 태산은 중국의 5대 명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학생들은 태산에 올라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을 화폭에 담았다. 또 공자의 생가를 찾아 수령이 2천여년을 헤아린다는 아름드리 향나무도 스케치했다.

학생 대부분이 지급받은 화첩 두권을 다 채울 정도로 이번 미술문화체험 효과는 대단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태산을 보면서 중국의 전통 그림들이 산천을 있는 그대로 그린 진경산수화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으로 본 중국 그림 속에서 산 모습은 탑에 가깝고 바위가 대부분이었어요. 중국에서는 왜 산을 그렇게 그렸을까 궁금했어요.” 박하은(23·한국화전공 4년)씨는 “동양화는 점과 선으로 대상을 표현한다. 작업실에서 작품 사진을 놓고 따라 그리기를 많이 하지만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이번 여행에서 실경을 마주하고 스케치했는데 아이러니하게 보이지 않는 능선이 상상이 됐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능선이 겹쳐 생략돼도 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세대여서 첫 해외여행이었다는 박씨는 이번 사생체험에서 (도자기 접시와 물감 대신 최소한의 화첩과 도구 정도로) 무게를 줄여 사생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도 소중한 의미라고 꼽았다.

지난달 13일 중국 산둥성 태산에서 목원대 한국화전공 학생들이 사생활동을 하고 있다. 목원대 제공

학생들은 올 사생체험이 공자 생가의 향나무를 쓰다듬다가 바위처럼 단단한 껍질을 보고 나무가 세월을 견디듯 예술성을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가 하면, 전통 수묵 기법을 기반으로 다른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고, 교수들의 표현 기법 등을 보고 새로운 구도로 사생을 하는 등 느끼고 배우는 기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목원대에서 유학했던 중국 졸업생들과도 만났다. 이들과 함께 현지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해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중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화 전공 교수들이 사제동행 해외미술문화체험을 진행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정황래·이종필·황효실 교수 등은 관공서, 대전 예치과·논산 제일치과 등 의료기관, 라홍갤러리 등에 작품을 임대하는 대신 지정 기부를 받는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교수들이 지금까지 조성한 장학기금은 1억4500여만원에 이른다. 이 기금은 제자 168명에게 해외미술문화체험 지원금으로 사용됐다.

이 프로그램은 이 대학 한국화 전공의 전통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부터 열리지 못했다. 교수들은 지난해 코로나19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제주도에서 프로그램을 연 데 이어 올해 12번째 해외 사생을 재개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해 2학기가 시작되는 오는 9월3일 이 대학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목원대 한국화 전공 학생들이 지난달 11일 산둥성미술관에서 열린 중국전국미전 산둥작품전을 관람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목원대 제공

교수들은 이 프로그램이 제자들을 예술가로 육성하는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이종필 교수는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큼 큰 배움은 없다. 이 프로그램은 제자들에게 잘 그리는 쟁이에서 작품에 깊이와 느낌을 담는 화가로 성장하는 기회”라며 “사생한 화첩 두권이 학생들에게 예술가의 길을 찾는 지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황래 주임교수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교수들이 솔선수범해 밑그림을 숙소에서 완성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화를 세계에 알리고 학생들이 한국 미술계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장학기금 적립이 예전 같지 않지만 해마다 장학기금을 쾌척하는 기부자들이 계셔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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