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팀 코리아, 원전수출의 새로운 장을 열다

2024. 8. 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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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호 산업부 2차관

지난 7월 17일, 체코 정부가 신규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민국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했다.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치열한 수주전 끝에 한국 원전산업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2009년 대통령비서실에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을 담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에너지를 담당하는 차관으로서 두 번째 원전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남다른 감회와 함께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세계는 지금 원전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믈린 부지에 최대 4기의 대형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1기당 약 12조원으로 예상되며, 두코바니 지역에 원전 2기 건설이 확정됐다. 나머지 2기 건설을 체코 정부가 결정하면, 이 또한 한국이 우선협상권을 갖게 된다. 동 사업은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로서, 유럽의 에너지 안보 강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체코 총리는 “모든 평가 기준에서 한국이 우수했다”며 한국 원전산업의 탁월한 기술력과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은 공사 기간과 예산을 준수하는 한국의 사업 관리역량이 이번 선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1971년 고리 1호기 착공을 시작으로 한수원과 협력업체, 원자력 학계와 연구기관들이 50여년간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며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가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해외 원전 사업은 국가 대항전이자 국가 총력전이다. 원전 건설부터 운영까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는 사업이고, 엄격한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하므로 국가 간 신뢰가 필수적이다.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져야 하는 이유다. 안정적인 원전 정책과 대통령이 주도한 정상 차원의 세일즈 외교는 발주국의 신뢰를 끌어낸 핵심 원동력이었다.

민관이 '팀 코리아' 정신으로 이룬 금번 성과를 '저가 수주'라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이는 한국의 건설단가가 경쟁국 대비 우위에 있다는 국제기구의 자료를 수익이 적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건설단가가 낮다는 것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지, 이를 우리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적다거나, 시장교란 행위인 '덤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발주국은 여러 차례 이번 입찰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었음을 강조해왔다. 내각회의를 거쳐 상대국이 신중하게 결론을 내린 만큼, 그 결과를 존중하고, 국내에서도 건설적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한수원과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는 계약협상 절차에 돌입했다. 최종 계약시점은 2025년 3월이다. 한수원은 60여명 규모의 '협상대응 TF'를 구성해 발주사와 실무회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7월 25일, 대통령 특사를 파견했으며, '두 나라가 함께 짓는 원전'이라는 비전 아래, 양국 산업부는 핫라인을 구축하고, 정례협의체를 통해 기업 간 협상을 밀착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과 체코 모두에게 상호 호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원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방형 경제를 지향하는 양국은 제조업 기반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협력 잠재력이 매우 크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주요 경제단체들은 환영 성명을 발표했으며, 에너지, 산업, 무역·투자, 과학기술 등 경제·산업 전반의 협력 관계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의 유럽시장 진출이 더욱 확대되고, 나아가 양국 기업이 함께 제3국 시장에 공동 진출할 수 있도록 민관이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번 성과를 제3, 제4의 원전 수출로 이어 나가, 원전산업을 명실상부한 주력 수출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유망 수출국과의 원전 수출 관련 협의에 속도를 내는 한편, 신규 원전 건설을 고려 중인 아시아·아프리카 신흥국과도 인력 양성, 공동부지 조사 등을 추진해 한국 원전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착실하게 조성해 나갈 것이다. 기후산업박람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를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신규원전 일괄 수주뿐만 아니라 원전 설비 수출도 블루오션 시장이다. 원전 설비 수출계약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8개월 만에 4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2017~2021년 실적의 6배 이상에 해당한다. 원전 설비 5조원 수출 목표를 연내에 달성할 수 있도록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집중할 것이다. 단품 기자재, 운영·정비 서비스 등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체코에서 이룬 성과를 발판으로 한국 원전 중소·중견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인증, 마케팅 등 관련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지난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께서는 우리 원전 산업이 흔들림 없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강조했다. 그간 정부는 환경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튼튼한 원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감, 금융, 연구개발(R&D), 인력 등 전방위적 지원을 강화해왔다. 원전산업에 대한 일관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원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는 연내 '2050 원전산업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다. 또 인력양성, 기반 시설 확충, 해외 진출까지 원전 산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국회와 협조해 마련할 계획이다.

체코 출신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가 “길은 걸음으로써 만들어진다”라고 말한 것처럼, 체코 원전 사업은 양국이 1990년 수교 이후 쌓아온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공동으로 설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경험을 살려, 팀 코리아는 체코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원전 수출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필자〉산업부에서 30년가량 산업·에너지 정책을 두루 섭렵한 정통 관료다. 최 차관은 1995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 그 해 행정고시 38회로 공직에 입문해, 방사성폐기물과장, 자동차항공과장, 기획재정담당관, 에너지자원정책관, 시스템산업정책관, 산업정책관,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핵심 보직을 맡았다. 산업·에너지 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뛰어난 소통 능력이 강점인 최 차관은 고위공무원 승진 이후 산업부 대변인을 두 차례 맡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산업부 2차관으로서 에너지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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