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에서 태안까지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8. 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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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 '라오스 방갈모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회원 몇 명과 충남 태안에 다녀왔다.

태안은 현재 김경준 방갈모 라오스 현지이사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먼 훗날, 지난 4월에 태어난 김 이사의 셋째 우주와 올해 2월에 태어난, 방갈모 한글학교 교감으로 봉사하고 있는 수파누봉대학교 쏨밧 교수의 둘째 아들 민주와 내 두 손자 규하, 규원이가 학교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라오 비어' 한잔하면서 라오스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토론하는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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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이사의 셋째아이 우주가 태어날 당시 원북면에 걸렸던 플래카드. 필자 제공

신현수 |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방갈모 상임대표

지난달 초에 ‘라오스 방갈모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회원 몇 명과 충남 태안에 다녀왔다. 민병갈 선생이 평생을 바쳐 일군 천리포수목원과 만리포 해변, 신두리 사구 등 태안의 명소 몇 곳을 둘러봤다. 단순히 자연 풍광만을 즐기기 위해 태안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태안은 현재 김경준 방갈모 라오스 현지이사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방갈모’에서의 김 이사 직책이 ‘라오스 현지이사’라면 라오스에 살고 있어야지 왜 태안에 살고 있는가?

코로나19 때문에 삶이 극적으로 바뀐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김경준 이사의 ‘드라마틱’한 삶도 빠지지 않는다. 김 이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시절 운영하던 학원 사업의 실패로 모든 걸 정리하고 홀로 라오스로 떠났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모나지 않은 심성을 무기로 라오스에 비교적 연착륙했다. 사진작가로, 가이드로 살아가던 중 운명적으로 라오스 부인을 만났다. 아이 둘을 낳고 잘 살았지만, 여행가이드에게 코로나는 비켜 갈 수 없는 재앙이었다. 더는 라오스에서 버틸 수 없게 된 김 이사는 지난 2021년 솔가하여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돌아와 정착한 곳이 바로 태안이다.

아무 연고도 없던 태안에서 비닐하우스 비슷한 집을 얻어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운이 좋았는지, 들어가기 어렵다는 군내버스 기사로 취직했다. 그 후로도 행운은 계속됐다. 지역사회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아, 면 자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비록 ‘아르바이트’ 자리지만 부인도 스마트 팜, 한과 회사 등에 취직해서 함께 돈을 모았다. 급기야 태안에 소박한 집과 작은 평수의 땅도 마련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태안에서 셋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원북면 중심지에 플래카드도 여러 장 붙었다. 면 단위 지역에서 셋째 애라니, 왜 경사가 아니겠는가?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 김경준 위원님의 셋째 득남을 축하합니다.”

비록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셋째 아이를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는 군내버스 기사 일은 그만두고, 다시 라오스 여행가이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처자식은 태안에 계속 살아갈 것이고, 김 이사가 라오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생활할 예정이다. 현재로도 매우 고맙고 만족스럽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라오스와 한국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이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방갈모 한글학교 제자들의 취업 문제다. 제자들이 한국으로 와서 모두 취직하면 좋겠지만 비자 문제 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라오스 현지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보려고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방갈모에서 루앙프라방에 세운 한글학교의 사업자등록증도 얼마 전에 발급됐다. 학교 허가증도 곧 나올 것이다. 학교 터에 있던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을 11월경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내년 2월 초까지 공사 마치면, 제1회 졸업식과 제3회 입학식은 이사한 학교 운동장에서 풍물도 치면서 진행할 예정이다. 김 이사가 얼마 전에 말했다. “형! 내년에 우리 학교 리모델링 마치고 이사 가면, 학교 운동장에 기념식수 삼아 망고나무 한 그루 심어요.” 내가 좋아하는 과일 망고. 죽기 전에 망고나무에서 열린 망고 한 알 따먹을 수 있을까? 실은 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먼 훗날, 지난 4월에 태어난 김 이사의 셋째 우주와 올해 2월에 태어난, 방갈모 한글학교 교감으로 봉사하고 있는 수파누봉대학교 쏨밧 교수의 둘째 아들 민주와 내 두 손자 규하, 규원이가 학교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라오 비어’ 한잔하면서 라오스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토론하는 꿈 말이다. 꿈꾼 게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꿈도 안 꾼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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