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는 3단계로 변신하는 공원이 있다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비가 오면 3단계로 변신하는 공원이 있다. 일상적인 수준의 비가 내리면 공원과 그 주변 빗물이 공원의 장미정원으로 모인다. 겉보기엔 평범한 정원이지만 지하에 저수지가 있어 2000㎥의 물을 담을 수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 수영장에서 레인 두 개가 빠진 만큼의 수량을 떠올리면 된다.
10년 만에 내리는 비교적 큰 비가 오면 이번엔 장미정원 옆 하키코트가 나선다. 이 코트는 3700㎥의 물을 담을 수 있도록 일부러 지표면보다 3m 낮게 설계됐다. 코트를 채우고도 남는 빗물은 공원 내부 호수를 지나 다시 장미정원으로 모인다. 이렇게 해도 감당이 안 되는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면 지하에서 문이 솟아오른다. 공원을 두른 얕은 담장 사이사이에는 주민이 지나다닐 수 있게 통로가 나 있는데 빗물이 일정 정도 차오르면 지하에 숨어있던 문이 자동으로 올라와 공원을 완전히 폐쇄한다. 공원이 통째로 물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대 2만2600㎥의 물을 가둔다. 올림픽 수영장 8.4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1928년에 완공된 이 공원이 처음부터 이런 기능을 갖췄던 건 아니다. 2011년 덴마크에 반세기 만의 큰 비가 내려 며칠간 도시가 마비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자 기후변화로 빈번해질 홍수 피해를 우려해 도시를 좀 더 ‘스펀지’처럼 만들고자 리모델링했다. 공원에 있는 1만1000그루의 다년생 식물, 22만개의 구근 식물은 도심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동시에 열섬 완화, 홍수 조절 기능을 제공한다. 녹지, 연못 같은 도시의 ‘그린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환경적 도전에 대응하는 걸 자연기반해법 혹은 저영향개발이라고 한다. 홍수에 맞서 도시의 빗물 흡수·저장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펀지시티라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의 여름철 폭우를 생각하면 바가지로 바닷물 퍼내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스펀지시티라는 아이디어는 중국에서 나왔다. 도시개발로 불투수면적이 느는데 기후변화로 ‘대륙의 폭우’를 거듭 겪다 보니 콘크리트 물그릇(그레이 인프라)만으론 안 되겠구나 싶어 2013년부터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남부의 융싱강 복원을 포함해 13곳에서 스펀지시티 사업을 시작했다. 2030년까지 중국 도시 공간의 80%는 자연기반해법을 적용하고 빗물 70% 이상을 의무 재활용해야 한다. 인프라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길게 놓고 보면 시대별로 방점을 찍는 지점은 다르다. 어떨 땐 성곽처럼 외침을 막는 게 중요했고, 어떨 땐 하수도 같은 공중위생 시설을 놓는 게 급선무였다.
이미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려면 어떤 인프라가 필요할까. 여러모로 호불호가 갈리는 파리올림픽이지만, 기후위기 시대 인프라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진다. 새 건물부터 도시 상징물까지 싹 개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파리는 흔적을 최소화하는 쪽을 택했다. 다음 개최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이미 ‘경기장 건설 제로’를 밝혔고, 차기 동계 올림픽 개최국인 이탈리아는 썰매장 신축을 고집해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2024년 이후에 열렸다면 가리왕산을 그렇게 밀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자연기반·지속가능성에 주안점을 두는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국내서 추진 중인 관광·방재 인프라를 보면 좀 기이하단 생각이 든다. 출렁다리와 케이블카, 한강 변에 들어설 서울링에 어떤 미래가치가 담겨 있나. 전국 14곳에 콘크리트를 부어 신규 댐을 지으면 정말 기후대응이 될까. 서울 25개 자치구마다 수변감성도시를 조성하겠다는데, 시내 2만5000개가 넘는 커피숍도 모자라 왜 또 개천까지 가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아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후위기, 지속가능, 자연기반은 잘 안보이고 재선, 재개발, 치적쌓기가 아른거려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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