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기밀 해외 유출하고도 집유…기소 당시 간첩 혐의 빠졌다

이민준 기자 2024. 8. 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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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사문화된 간첩죄, 개정 시급해”

군사·방위산업 기밀을 외국에 유출했더라도, ‘북한’이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법상 간첩죄는 적국(敵國)을 위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니어서 간첩죄 적용이 어렵고, 북한 외 다른 국가는 적으로 볼 수 없어 간첩죄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962년에 제정한 군형법은 적(敵)을 위해 간첩 노릇을 한 자, 적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기밀을 적에 누설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한다. 여기서 ‘적’은 북한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누설 상대가 북한만 아니면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말이 나온다.

4일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예비역 공군대장 A씨는 2006~2007년 미국 군수업체에 군사 2~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합동원거리공격탄(JASSM) 도입 관련 정보를 넘기고도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검찰은 그에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고, 대법원은 2015년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법원./연합뉴스

2008년부터 6년에 걸쳐 군사기밀 31건이 국내외로 유출되는 데 가담한 예비역 해군 대위 염모씨는 검찰 수사 도중 구속됐는데도 불구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그는 주범과 공모해 해군 음탐장비 도입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직접 수집한 뒤, 해외 유출 자료의 번역을 도운 사실도 인정됐다. 염씨 역시 간첩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중국 등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정보관의 명단을 유출해 2019년 징역 4년이 확정된 국군정보사령부 공작팀장 출신 황모씨에게도 간첩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형법상 일반이적 등 혐의가 적용됐다.

법조계에선 간첩죄에 규정된 적국을 ‘타국(他國)’으로 바꾸거나 대상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안부장 출신 변호사는 “간첩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나 마찬가지”라며 “북한 측에 바로 넘어간 증거가 있으면 국가보안법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나라에 정보를 넘기면 기밀 유출 정도에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인도 “국가의 이익을 해치는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넓히거나 기밀 유출의 형량을 높이는 등 현대 상황에 맞게 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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