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존재감 도마 위…與의원까지 "목소리 좀 내주셔야"
교제폭력 등에도 소극적 대응…범부처 대책 지지부진
요직은 타 부처 출신에 공석…차관 업무 과중도 문제
여가위 "조속히 기능 정상화해야"…여야 한목소리 지적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여성가족부 장관 공석 사태가 벌써 6개월 째에 들어섰다.
신영숙 차관이 장관 대행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교제폭력을 비롯한 여성 관련 정책에서 여가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조속히 장관을 임명해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일 여가부 등에 따르면,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이 지난 2월 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166일째 장관 임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가부는 2001년 출범 당시부터 숱한 폐지론에 시달렸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선 후 여당인 국민의힘이 여가부를 폐지하고 기능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을 발의했으나, 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여기에 지난달 1일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대책을 전담으로 맡을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발표하면서 여가부는 존치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임기 내 폐지는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기 행정안전부 조직국장은 해당안을 발표하면서 "21대 국회 때 여가부 폐지에 따라서 보건복지부로 기능을 넘기는 법률안이 발의가 됐는데, 국회 종료에 따라 해당 법안도 폐기됐다"며 "정부가 (이번에) 제출하는 안에는 여가부는 현행처럼 존치하는 안으로 발의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 사실상 백지화됐는데…'교제폭력' 소극적 대응 도마에
교제폭력은 전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이다. 해마다 교제폭력과 교제살인 사건이 늘고 있지만 현행 법상 친밀한 관계에 일어나는 폭력을 규율하는 법은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뿐이다.
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은 배우자나 친족 등이 대상이고, 스토킹처벌법 역시 스토킹 행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라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올해 들어서도 한 의대생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연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유명 유튜버 '쯔양'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 피해와 협박을 당해왔고, 그 변호사와 일명 '사이버 렉카'로 불리는 다수 유튜버들에게 금전 협박에 시달려왔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여가부는 잇따른 교제폭력 사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난달 18일 취재진이 '쯔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6월 말 발표한 피해 대책에 담기지 않은 부분은 없다고 판단한다"며, "개개인 사건에 모두 입장문을 발표할 순 없다. 여성단체라면 (입장을) 내겠지만, 우리는 정부 기관으로서 입장문 발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이를 일축했다.
여기서 말한 피해 대책은 여가부가 6월27일 발표한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 방안'이다. 112에 신고하면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안내하고,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등 보호시설 이용 서비스와 법률상담 및 소송구조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대책 발표 직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기존에 여가부가 하던 사업과 큰 차이가 없는 데다, 가장 중요하게 꼽혔던 교제폭력에 대한 법제화가 빠지면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법무부와 경찰청 등 범부처 공조가 필수적인데 제대로 공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법무부, 경찰청 등과 긴밀히 협조하며 교제폭력에 엄정대응하고 있다"며 "법무부의 법·제도 개선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경찰청은 교제폭력 사건에 엄정 대응할 것을 밝힌 바 있어 여가부 업무 중신으로 방안을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차관·기조실장 타 부처 출신…주요 국장·산하기관장도 공백 사태 지속
차관이 장관의 업무까지 도맡으면서 업무 과중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 범부처 대책 같이 타 부처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파워게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주요 요직이 외부 출신인 것도 적극적인 업무 추진을 막고 있는 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장관 대행을 수행 중인 신영숙 차관은 1993년 공직에 입문해 내리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등에서 행정인사 업무를 맡아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12월 여가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대통령실은 김현숙 전 장관의 사표 수리 이후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곧바로 실국장 인사를 단행했다. 부처의 전략기획과 예산 등을 맡아 핵심으로 불리는 기획조정실장에는 복지부 출신의 김기남 인구정책실 사회서비스정책관(국장)이 임명됐다.
이 밖에도 권익증진국장과 정책기획관이 공석으로, 사실상 타 부처에서는 볼 수 없는 요직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가족지원정책을 담당하는 산하 기관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도 6개월째 공석이다. 건강가정진흥원 내에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있는데, 올해 9월 독립 법인 준비 중이지만 현재 양육비이행관리원장이 건강가정진흥원장을 대행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사실상 백지화한 지난달 이후 몇몇 인사에 대한 여가부 장관 하마평이 오르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1개월이 넘도록 장관 임명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가부 관계자는 "저희도 발표가 돼야 아는 것이고, 인사권에 관한 사안이라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갈음했다.
여야, 한목소리로 "여가부 기능 정상화해야"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기구에서 계속해서 여성폭력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힘을 잃고 정책 예산이 깎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장관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백승아 의원도 "올해 교육부에만 20건에 가까운 대통령 지시 사항이 내려갈 동안 여가부에는 2022년 7월25일 폐지 로드맵 마련 지시 이후로 단 한 건의 지시 사항도 내리지 않았다"며 "거의 모든 여성 정책 사업 예산도 감액되고, 재기능하지 못하도록 고사시키고 있는데 하루 빨리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신 차관이) 열심히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동료 의원들 우려에 동의한다"며 "하루빨리 장관이 임명돼 여성과 가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정책 기능과 업무가 제대로, 효율적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당 간사인 서범수 의원도 "더 분발해서 여가부 답게 여성, 가족, 청소년 문제에 대해 목소리도 좀 내주셔야 된다"며 "여가부가 너무 위축돼 있어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 차관은 "우려하시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차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저희 직원들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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