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과 논란의 파리올림픽…프랑스의 자긍심과 그늘 동시에 드러내다
(시사저널=채인택 국제전문기자)
7월26일 개막해 8월11일까지 계속되는 제33회 파리 여름올림픽은 개막식 논란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거센 스포츠 민족주의 아래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올림픽 중계나 뉴스는 자국 중심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1924년 이후 딱 100년 만에 올림픽을 치르는 파리 사람들의 자긍심과 고민을 살펴봤다.
2024 파리올림픽은 파란으로 시작됐다. 7월26일 파리 한가운데를 흐르는 센강과 그 주변에서 열린 개막식이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지면서다. 성소수자들이 줄이어 앉아있는 모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조롱한 '신성 모독'이라는 지적부터, 남녀와 중성 세 명이 한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장면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주장까지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 따르면 개막식 연출자인 토마스 졸리 예술감독은 "누군가를 조롱할 의사는 없었다"며 "자유·평등·연대라는 프랑스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행사가 되기를 바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기독교를 조롱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고, 미국 통신회사 C스파이어는 올림픽 광고를 중단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결국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불쾌감을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 모독" "개성 넘쳐" 평가 엇갈린 개막식
사과 후에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트럼프는 7월29일 폭스뉴스에 "나는 아주 개방적인 사람이지만, 그들이 개회식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며 "개회식에 다양한 공연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형편없었다"고 했다. 미국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연다.
개회식은 선수들이 배를 타고 센강을 지나는, 세계 최초의 경기장 밖 수상 입장이라는 신선한 발상 전환으로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주최 측은 한국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잘못 소개하는 호명 실수를 범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사과했지만 수많은 한국인에게 찝찝한 기억을 남겼다.
논란과 실수로 문을 연 파리올림픽을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현지 유력 신문인 르몽드의 평가를 보자. 이 신문은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파리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며 "국제 언론들은 개막식이 '유일무이한 행사'라며 '독특하고 기묘하면서도 대단히 프랑스적인 성공'이라고 호평했다"고 보도했다. 논란과 경악보다 창의성과 참신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신문은 "셀린 디옹이 에디트 파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에펠탑에서 노래하는 것으로 4시간 동안 이어진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하자 미국 NBC방송의 개막식 중계진은 압도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고 전했다. NBC의 중계를 맡은 미국 가수 켈리 클락슨은 "행사가 대단히 비범했다"고 평가했으며 다른 국제 미디어들도 이런 느낌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력 일간지 LA타임스는 "개막식이 대단히 프랑스적이었다"며 "프랑스가 개막식 행사의 수준을 아주 높였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이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와 가장 정교한 고급 패션, 그리고 세련된 창작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온 프랑스인들이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개막식을 연출했다"고 평했다.
특히 개막식 중간에 패션쇼를 벌이고, 조명을 끈 에펠 타워를 배경으로 셀린 디옹이 등장해 노래를 부른 것 등을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셀린 디옹은 전신근육강직 인간증후군이라는 희귀 신경질환으로 1년7개월 동안 쉬다가 이날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이 신문은 개막식 행사에 '3인 가족(남녀와 중성 세 명이 한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장면)'이 보인 것은 처음이라며 이를 "약간 독특한 동성애적 장면과 엄청나게 멋진 모습, 그리고 아주 프랑스적" 장면이라고 언급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기독교적·보수적 세계를 경악시켰지만, 프랑스와 미국 등 서구의 진보적 미디어에선 "프랑스적"이라는 말로 정리해 버렸다.
문화 연구적으로 접근하면 이번 개막식 공연은 '문화적 하이브리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차별·편견에 대항하는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형평성·포용성 등 진보 가치관의 결합, 그리고 글로벌화로 다양한 문화가 만나 융합하는 '슈퍼 변용(Super-transformation)'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종·젠더·성정체성·신념·체형 등에 따른 차별·구별을 몰아내고 평등·다양성·자유·평등·연대·생태지향·지속 가능성 사회로 가자는 메시지를 실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치른 '에코' 파리올림픽
프랑스 혁명 기간에 단두대에서 처형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이 잘린 모습으로 서있는 쇼킹한 장면에 경악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퍼포먼스는 앙투아네트가 처형 직전 수감됐던 옛 법원청사 겸 교도소인 센 강변의 콩시에르주리에서 이뤄졌다. 프랑스가 대혁명으로 이뤄진 나라임을 강조해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이번 개막식은 프랑스나 파리 사람의 생각과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해석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 행사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파리올림픽이 프랑스 내부적으로 무조건 환영받는 행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럽권 뉴스 전문채널로 프랑스 리옹에서 방송하는 유로뉴스는 2024년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시와 그 주변이 겪고 있는 '이율배반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이 방송은 "파리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이번 대회의 스타"라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파리는 이번 올림픽을 역사상 가장 '지속 가능한 (친환경) 행사'로 준비했으며, 이 덕분에 미래 올림픽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파리를 상징하는 시내 중심부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장소에서 주로 열렸다.
경기장과 행사장의 95%가 기존 건물을 손보거나 올림픽 이후 철거할 가설 시설이다. 이를 통해 파리올림픽은 90억 유로(약 13조334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올림픽은 지난 수십 년 이래 가장 비용이 적게 든 행사로 기록된다. 파리시 당국은 이번 올림픽이 그런 점에서 기념비적인 행사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선수 숙소와 공공 교통시설에 에어컨도 쓰지 못하게 하고, 선수 식단에 육류도 최소화할 정도로 생태 올림픽을 앞세운 이번 대회에 걸맞은 시설이다.
하지만 글로벌 축제를 여는 과정에서 갈등과 손실도 만만치 않았으며 이 때문에 회색지대로 불리는 올림픽의 그늘이 생겼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파리 주변의 열악한 저소득층 밀집 주거지역인 방리유와 소외계층의 불만과 분노다.
방리유 지역은 프랑스 본토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것은 물론 도시 시설도 열악하다. 센생드니의 경우 스포츠 시설 밀도가 프랑스의 105개 행정구역 중 103위일 정도로 열악하다. 체육교사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 학교 스포츠 시설 확대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코페르93의 대변인인 세르주 렛체스는 "광역 파리 전체에선 스포츠 시설이 인구 1만 명당 평균 25개, 전국적으론 50개인데 우리 도시에는 고작 16개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게다가 센생드니의 스포츠 시설은 대부분 40~50년 전에 지어져 낡았다.
주목할 점은 이런 지역에 파리올림픽을 위한 시설투자가 이뤄졌지만 시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어 불만을 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행정 당국과 시민단체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파리시의 피에르 라바당 스포츠 담당 부시장은 유로뉴스에 "이번 올림픽은 근린지역까지 바꿔 도시 새 단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올림픽 덕분에) 10~15년 걸릴 일을 4~5년 안에 마쳤다"고 말했다. 특히 파리 북부 센생드니에는 올림픽 개최를 위해 거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대규모 투자됐지만 지역민에겐 '그림의 떡'
우선 파리올림픽을 위해 건설된 시설 중 가장 큰 올림픽 빌리지가 들어서 최첨단의 미래 친환경 구역을 선보였다. 이곳은 올림픽이 끝나면 6000명이 사는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하지만 평방미터당 7000유로(약 104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 때문에 센생드니 주민에겐 '그림의 떡'이 될 전망이라고 유로뉴스는 꼬집었다. 자칫 가난하고 소외받는 주민들에게 위화감만 안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은 광역 파리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이 벌어지지만 정작 지역 거주자들이 즐길 스포츠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 도시에 10억 유로 이상을 투입했지만 주민을 위한 스포츠 시설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지내던 사람들을 파리올림픽을 위해 다른 도시로 퇴거시킨 조치도 비판을 받는다. 100여 개의 관련 단체와 비정부기구(NGO)로 이뤄진 시민단체인 '메달의 이면'은 당국이 1만2500명에 이르는 '올림픽 기간 중 눈에 띄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을 광역 파리에서 퇴거시켰다고 주장했다. 대상은 대부분 홈리스들이다. 이 단체는 "당국이 이들에게 영구 주거지를 제공하는 해결책을 실행하는 대신 눈에 띄지 않게만 했다"고 비난했다. 거리에서 지내던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 오를레앙·앙주·마르세유 등 멀리 떨어진 도시로 퇴거시켰다는 것이다.
파리의 공연예술극장인 메종 데 메타요에 3개월 이상 머물러오던 약 200명의 이주민은 2020 도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한 '재팬 하우스'를 설치할 공간 마련을 위해 퇴거됐다. 이곳에선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사회단체들은 홈리스와 이주민 퇴거를 '사회적 청소'라고 부르며 프랑스답지 않은 반인권적·반연대적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파리올림픽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다양성 존중이라는 프랑스의 자긍심과 계층과 지역 갈등이라는 그늘을 동시에 노출한 글로컬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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